전통주 만드는 과정과 함께 스토리 집약된 공간
자체누룩 사용해 발효, 압착 과정서 약주·탁주 구분
철저한 위생 관리 프로그램…자동화·육안검사 병행
국순당 견학 프로그램 ‘주향로’…역사까지 한 눈에
1970년대 이후 쇠락 일로를 걷던 막걸리가 2000년대 들어 해외열풍에 편승해 ‘꿈틀’ 솟아나고 있다. 홈술의 영향으로 막걸리가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다양한 제품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가수 영탁의 ‘막걸리 한 잔’이 유행처럼 불리기도 했다.
지난 14일 기자는 막걸리가 생산되는 국순당 양조장을 방문했다.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 달려 강원도 영동고속도로 둔내나들목을 빠져나와 5분여를 더 달리자 국순당 횡성 양조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에 들어서자 은은한 막걸리 향이 먼저 반겼다.
횡성 양조장은 전통주를 만드는 과정은 물론, 역사까지 집약된 공간이다. 만드는 품목만 해도 탁주, 약주, 과실주, 일반증류주, 청주, 기타주류 등 6개 주종에 달한다. 백세주를 비롯해 대박, 우국생, 1000억 유산균 막걸리 등 국순당 주력제품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 철저한 위생관리…“특허 자체누룩으로 효율·품질 UP”
양조장에 들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양조장 내부로 들어서려면 위생모와 위생복은 필수다. 전신을 덮는 위생복에 머리카락 한 올도 겉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머리를 묶어 올렸고, 그 위에 위생모까지 착용했다. 마스크와 일회용 덧신 역시 덤으로 따라 붙었다.
이후 이물질 흡입기로 위생복의 먼지를 꼼꼼히 떼어낸 뒤 손을 씻고 말리는 작업을 거쳤다. 여기에 ‘에어샤워 부스’로 이동해 만에 하나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먼지를 제거하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손 소독을 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전부 거친 후에야 입장이 가능했다.
양조장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천장에 설치된 색색의 배관이 눈에 들어왔다. 술 제조에 필요한 주조 용수부터 완성된 술까지 모두 배관을 타고 이동한다. 재료와 술 모두 사람 손을 타지 않다보니 위생적으로 관리된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전통주를 만들지만, 모든 공정은 첨단설비로 자동화돼 있다. 각종 재료의 배합에서부터 병입까지 터치스크린 방식의 모니터를 통해 제어되며, 제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역추적을 통해 원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이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양조 공정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크게 탁주(막걸리)와 백세주로 대표되는 약주(맑게 걸러낸 술)로 구분된다. 공정을 살펴보기 전 들른 부원료 저장실엔 국순당이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는 누룩이 포대째 쌓여 있었다. 제습기를 통해 일정한 온습도를 유지하는 게 필수인 공간이다.
전통주 업체 대부분이 사용하는 누룩은 일본에서 들여온 ‘입국’으로, 고두밥에 섞어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국순당은 특허기술인 ‘생쌀발효법’을 활용해 술을 만든다. 자체생산 누룩이 입국보다 전분 분해 능력이 뛰어나 생쌀도 분해가 가능한 덕분이다.
‘생쌀발효법’은 조선시대 문헌인 ‘고사촬요’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데, 술이 완성될 때까지 높은 열을 가하지 않고 가루 낸 생쌀과 상온의 물을 그대로 사용한다. 때문에 열을 가하지 않아 영양소 파괴가 적고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장점이 크다.
◇ 발효에서 병입까지…“전과정 자동화시스템”
레시피에 따라 계량된 재료가 용수와 함께 발효 탱크로 자동 이동되면 본격적인 ‘술 담그기’가 시작된다. 발효 탱크는 평균 4만ℓ 크기다.
탱크 하나당 막걸리 15만병 정도를 생산할 수 있다. 국순당은 84만ℓ 술을 동시 발효하고, 110만ℓ 동시에 저장할 수 있는 수준의 규모를 갖췄다.
본격 발효에 앞서 탱크의 4분의1 정도만 원부재료와 용수를 채워 효모를 활성화시킨다. 하루 정도 지나면 탱크를 가득 채워 본격적인 발효를 시작한다. 발효 기간은 기본이 7일이다. 발효 3일차 된 탱크 뚜껑을 열자 보글보글 거품을 일으키며 익어가는 막걸리가 보였다.
이 상태에서 알코올 도수는 12% 정도로, 4일차엔 14~15%, 7일차엔 18~19%까지 도수가 올라간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발효 과정에서 열이 발생해 설정된 온도를 넘어서는 경우엔, 탱크 내부에 설치된 배관에서 냉각수가 돌아가도록 해 일정 온도를 항상 유지한다.
발효가 끝난 술은 ‘술덧’이라고 부른다. 이 술덧을 꽉 짜서 맑게 걸러주면 백세주와 같은 약주가, 체에 걸러주면 걸죽한 형태의 막걸리가 된다.
약주의 경우 여기서 4일 이상 저온 숙성시켜 제성(맛과 알코올 도수 맞추는 작업) 단계를 거치면 용기에 담기 직전 술이 된다. 여기에 ‘아이싱’ 등 탄산이 포함된 제품은 탄산을 투입하는 공정이 추가된다. 내용물 주입 장비가 있는 공간은 클린룸으로 분리해 위생 관리를 더욱 철저하게 한다.
제품 공정 역시 ‘2중’ 체크를 필수로 한다. 용기 생산부터 라벨 부착, 용기 세척, 내용물 주입, 뚜껑 닫기, 제품 포장까지 대부분 자동화 설비를 통해 1차 확인한다. 이후 혹시 모를 불량품을 걸러내기 위해 직원이 육안검사를 한번 더 실시하고 있다.
◇ 타임머신 탄 듯…“과거부터 미래까지 전통주 스토리 담아”
이날 국순당의 견학공간 ‘주향로(酒香路)’도 들렀다. 양조장 2층에 위치한 ‘술 향기 가득한 길’이라는 의미로 국순당 횡성 양조장 견학로를 일컫는다. 올바른 우리 전통술 문화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국순당이 지난 2005년 문을 열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외부인에게 문을 닫았지만, 과거만 하더라도 연간 1만명 이상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국순당 횡성 양조장은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명소로 입소문이 난 곳이기도 하다.
길게 뻗은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전통주 관련 전시물이 눈길을 끌었다. 신라 귀족들의 술자리 놀이기구인 주령구 모형과 조선시대 술병부터 50여년전 막걸리 병, 누룩 틀 등 술을 빚던 옛 도구 등을 통해 우리 술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이외에도 과거 각 지역에서 생산된 전통주를 소개하는 전통주 지도는 우리나라 가양주 문화 등이 기자의 흥미를 일으켰다. 곳곳에 마련된 포토존과 술 활용도에 따라 꾸며진 술상, 역대 국순당 얼굴로 대표되는 모델 포스터들이 재미를 더했다.
국순당 제품 뿐 아니라 지금은 볼 수 없는 옛 소주와 맥주병도 전시해 중장년층 관람객에겐 추억을, 젊은 세대에겐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듯 했다. 전시회를 모두 둘러본 뒤 기자는 갓 생산된 막걸리와 약주 등 다양한 전통주를 맛보며 비교 시음을 체험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