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대1 경쟁률 뚫고 '시카고' 록시 하트 캐스팅
꿈 꾸는 록시에 공감, 인간적인 캐릭터로 표현
"엄격했던 20대, '시카고' 덕분에 건강해져"
“제 30대 첫 주연작이 ‘시카고’라 정말 다행이에요”
내려놓아야 비상할 수 있고, 내려놓아야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다.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길 강요받고, 그 시스템 안에 갇혀 살면서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티파니 영이 내려놓음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뮤지컬 ‘시카고’ 덕이었다.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랜 꿈이었던 록시 하트를 만나면서 티파니 영은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30대를 들여다보게 됐다.
“‘시카고’는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본 작품이었고, 20대가 되자마자 한국에서 소녀시대 멤버들과 봤던 작품이에요. 당시 최정원·옥주현 선배 공연을 봤어요. 볼 때마다 더 매력적이고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더 알고 싶었죠. 30대를 배우로서 여는 작품이 ‘시카고’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카고’의 대사와 춤을 줄줄이 외웠고, 무대의 배경이 된 1920년대 미국에서 듣던 음악과 의상, 심지어 술까지 섭렵했다.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톱25를 들으며 재즈를 공부했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거듭했다. 제작사인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단 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그가 했던 숱한 노력들에 “감동받았다” “선물 같은 록시”라고 칭찬을 거듭했다.
2000년 국내 초연한 ‘시카고’는 재즈와 갱 문화가 발달한 1920년대 격동기 미국을 배경으로 ‘관능적 유혹과 살인’이라는 테마를 녹여낸 작품이다. 7월18까지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16번째 시즌을 선보인다.
록시 하트는 애인에게 배신당하고 불륜남을 살해한 코러스걸으로, 섹시하면서도 순수한 얼굴, 밝은 매력의 젊은 여성이다. 티파니 영은 록시 하트를 “인간미 있는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록시 하트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야망녀’ ‘관능미’를 꼽는 사람들이 많지만, 티파니 영은 록시 하트는 특별하다. ‘사랑에 허기진’ 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순수하고 인간적이다.
“스타가 되고 싶어서 꿈을 꾸는 록시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사랑에 고파하는 록시를 보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시카고’가 롱런할 수 있는 비결도 정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진이 모든 배우를 관찰하고, 캐릭터를 배우의 성향을 극대화시킨 캐릭터로 만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실제로 같은 역할이어도 배우마다 단어나 안무도 조금씩 다르거든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티파니 영의 ‘인간적이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록시’고요.”
무대에 오른 티파니 영의 모습은 록시 그 자체였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그리고 인간적인 록시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시카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믿음 덕이었다. 티파니 영은 매일 공연을 마치고 제작진에게 노트를 받고, 그날의 부족했던 점과 좋았던 점을 체크한다. 그는 “마치 훈련을 하는 스포츠 선수와 같다”고도 표현했다
“‘시카고’는 연기와 춤, 노래 뿐만 아니라 정확한 타이밍과 악기 큐사인, 조명 위치까지도 모든 게 마킹이 되어 있어요. 몇 번째 계단까지, 어떤 박자로 내려와야 하는지 까지 모두 계산이 되어 있죠. 그래서 어려웠어요. 연습만이 살길이었죠. 제가 운동선수라면 너무 좋은 코치들을 만난 것 같아요.”
소녀시대로서 10여년을 무대에 오르면서 티파니 영은 스스로에게 혹독했다. 고작 3분의 무대를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해야 했고, 그런 티파니 영을 강요받아왔다. 얼굴에 작은 트러블도 허용되지 않았고, 손톱 하나도 신경을 써야했다. 진짜 티파니 영을 철통보안하듯 완벽하게 자신을 꾸며왔다.
“록시를 만나고 실수를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연습 초반엔 틀리면 도미노처럼 집중력이 다 깨졌어요. 그럴 때마다 내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고 자책했죠. 어느 날은 울고 있는 저에게 배우들이 ‘어떻게든 함께 준비해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보호 받는 느낌을 받았어요. 인생 살면서 너무 소중한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게 된 것 같아요. 연습실이 저에겐 치유의 현장이었죠. 덕분에 제 안에 밸런스를 맞춰가게 됐고, 건강해진 것 같아요.”
“스스로가 내려놓아야, 보는 사람도 나를 편하게 볼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티파니 영이다. ‘시카고’를 통해 내려놓음의 지혜를 알게 된 그는 이제 또 다른 선택지 앞에 놓여 있다. 내려놓음으로서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게 된 만큼 그가 어떤 선택들을 하게 될지도 관심이다.
“티파니를 떠올렸을 때 기대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30대엔 더 멋진 선택을 하는 티파니 영이 되고 싶어요. 이제 드디어 제 자신을 만났으니 사람들에게 ‘역시’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역시 티파니 걱정은 하는 게 아니었어’라는 말을 스태프들에게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1등 한 기분이에요. 앞으로도 그러려고 노력할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