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보고서 통해 공기업 부채 위험 지적
GDP 23.5% 수준… 기축통화국보다 많아
“초고령화로 갈수록 부채 규모 증가할 것”
국가정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나라 공기업 부채가 중앙정부 부채의 절반을 초과하고, 지방정부 부채의 7배를 상회하는 유일한 나라”라며 “이러한 공기업 부채는 향후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KDI는 20일 발간한 ‘공기업 재무건전성 강화 방안에 관한 연구’와 ‘공기업 부채와 공사채 문제의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지적하고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추정치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금융공기업 부채가 2017년 기준 GDP의 23.5%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IMF 추정치가 존재하는 OECD 33개국 가운데 두 번째 수준이다. 33개국 평균(12.8%)을 크게 웃돈 것은 물론, 기축통화국인 영국·캐나다·독일·프랑스·일본보다도 더 많다. 정부와 공기업 부채를 합산한 것보다 월등히 많은 자산을 보유해 ‘특수한 경우’로 평가받는 노르웨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최고다.
KDI는 공기업 부채 문제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노년층이 늘어나면서 주거, 교통, 보건·의료 등 공공서비스 확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KDI는 “현재 국가 지급보증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공기업 부채는 건전성이 악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기업 부채 증가 원인 가운데 하나로 공사채 발행을 꼽았다. KDI는 “우리나라 공기업은 주로 공사채 발행을 통해 부채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는 공사채가 대출과는 달리 담보도 필요 없고 공기업의 신용등급만 높다면 거액의 자금을 쉽게 유치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거의 모든 공기업이 국가와 같은 신용등급을 부여받고 있어 공사채 발행에 제약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채무를 대신 갚아줄 것이라는 믿음, 즉 정부의 ‘암묵적 지급보증’이 자본잠식에 빠진 공기업을 비롯해 부채비율이 2000%를 초과하는 공기업까지 공사채 발행에 제약이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급보증 폐지·베일인 도입·자본규제 등 필요”
KDI는 “절대다수 공사채가 국가보증채무로 분류되지 않아 공식적인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이는 일반적으로 국회 동의를 거친 명시적인 지급보증이 공사채에 적용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사채를 국가보증채무로 분류하더라도 실효성 있는 관리가 이뤄지기 어려운 점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지급보증이 제공되는 채무는 보증수수료와 함께 담보나 충당금 설정이 요구되지만, 공사채는 국가보증채무 관리규칙에 따라 이런 요구를 할 수 없다.
이에 KDI는 공기업 일반 사업에 대해 지급보증을 폐지하고, 대신 조건부자본증권을 활용한 채권자 ‘베일인(bail-in)’ 제도를 제안했다. 베일인 제도는 국민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기업이 실패한 경우 납세자 부담이 아닌 채권자 부담으로 해당 기업을 구제하는 제도다.
KDI는 “‘채권자-손실분담형’(베일인) 채권을 공기업 부문에 도입하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발행기관의 자본비율이 기준치 이하로 하락할 경우 채권이 주식으로 전환되면서 자본비율이 다시 반등하도록 하는 자동 안정화 기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급보증도 사회적 편익은 높지만 수익성이 낮은 때에만 예외적으로 하고, 이 역시 적절하게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DI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같은 기존 정부 규제는 효과적 대안이 될 수 없다”며 관련 채무를 모두 국가보증채무에 산입하고 위험조정 보증수수료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위험조정 보증수수료제도란 공기업이 지급보증을 제공 받는 대가로 국가에 보증수수료를 납부하는 것으로, 사업 위험도가 높을수록 더 높은 보증수수료를 납부하게 된다. KDI는 “(위험조정 보증수수료를 도입할 경우) 공기업은 사업 위험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정부도 위험이 큰 정책사업은 가급적 할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사업과 예외적인 사업을 효과적으로 구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에서 자체 자금조달이 안 되는 사업 중 사회적 가치가 높은 사업을 발굴해낼 수 있는 효과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자본규제도 방법 가운데 하나다. KDI는 “공기업은 은행에 비해 국가가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고, 그만큼 재정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므로 최소한 은행에 비견되는 정도의 자본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