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8개 대기업 CEO 불러놓고 경쟁입찰 전환 선포
수천명 식사 한꺼번에 제공…중소업체가 감당하기 어려워
‘외국계 기업 기회 될수도’…“중소업체 위한 환경 뒷받침돼야”
국내 대규모 급식업계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압박으로 자체 운영해 오던 그룹 ‘구내식당’ 운영권 입찰을 앞으로 외부에 개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타 그룹사의 구내식당 입찰에 참여해 규모가 큰 수주를 따 낼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영업을 해왔던 기존 구내식당 사업권을 경쟁사에 내줘야 할 수도 있다.
특히, 단체급식업에 종사하는 독립기업·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기호가 생길 것이라는 당초 공정위의 기대와 달리, 엉뚱하게 외국계 업체로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난 5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삼성, 현대차, LG, 현대중공업, 신세계, CJ, LS, 현대백화점 등 8개 대기업집단은 단체급식 일감개방 선포식을 갖고 구내식당 일감을 전격 개방키로 선언했다.
그간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 ‘부당한 일감몰아주기’ 지적을 받아온 것이 주요 배경이 됐다.
그러나 경제계에선 공정위의 예측과는 다르게 외국계 기업이 사업권을 가져갈 공산이 크다고 우려한다. 수천 명의 식사를 한 번에 제공해야 하는 대규모 사업장 급식은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직원 복지에서 출발한 단체급식 사업 특성상 외부 업체가 들어온다고 해서 딱히 식사의 질이 높아지거나 가격이 저렴해지긴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결국 경쟁입찰을 거쳐 대형 업체들이 돌아가며 일을 가져가는 ‘무늬만 일감 개방’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 급식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급식을 위해서는 식수원에 맞는 유통시스템이나 공급 능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당장 중소기업에 기회를 열어준다고 해서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며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저가 출혈경쟁에 따른 업계 수익성 악화와 서비스 품질 저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급식은 유통망이 확보돼야 할 수 있는 사업인데, 사실상 지방에 동떨어진 수익성 없는 사업장 등은 경쟁 업체들에 들어오라고 해도 안 들어온다”며 “수도권에만 입찰이 몰리는 현상 역시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의 경우 농가와 계약 재배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상품을 수시로 공급을 받아 제공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업체일수록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식자재 관리나 보관 등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는 회사가 운영을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특히, 급식 사고는 큰 문제다. 대규모 회사에서 식중독 사태라도 한 번 터진다면 업무 마비로 이어질수 있어서다. 때문에 기업들에 있어 급식은 단순히 밥을 제공하는 일을 넘어 ‘리스크 관리’ 영역으로 여겨진다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또 다른 급식업계 관계자는 “극단적으로 대형 제조공장에서 식중독 사태라도 한 번 터진다면 생산 라인이 며칠 동안 마비될 수도 있는데 그에 따른 기회비용은 어떻게 할지 당장 대안이 없는 업체가 수두룩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대기업들은 이런 사고에 대비해 보험에 미리 가입을 해두지만, 보험료 자체가 부담이 되는 중소 업체가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며 “정부에서는 밥 주는 일을 너무나 안일하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자칫 외국계 기업 혜택으로 돌아갈수 있다는 지적도 뒤를 잇는다. 실제로 2013년 정부 청사 구내식당 업체 선정 시 대기업을 제외하자 외국계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한 바 있는데, 비슷한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소 급식업체 역시 회의적인 반응이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중소 업체가 입찰에 참여할 기회 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대규모 경쟁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매출 규모부터, 뒷받침 돼야 할 조항이 수두룩하다.
박근형 캠퍼스 대표는 “정부의 취지 자체는 환영하지만, 중소업체들이 실질적으로 진입할수 있도록 입찰 문턱을 대폭 낮춰주는 작업이 뒷받침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지 않으면 대기업을 대신해 외국계 기업들과 중견 기업들의 또다른 잔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