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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새 7명 사망…쿠팡맨들, 로켓처럼 숨가뿐 하루를 산다


입력 2021.03.10 05:00 수정 2021.03.10 13:07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우리는 로켓이 아니라 사람"…협업 명분 아래 강제성 부여, 살인적인 상대평가 제도

"연속 심야배송 제한, 최소 휴식시간 보장, 심야 근로 교대제 도입, 주기적인 건강 검진 절실"

쿠팡은 로켓배송.ⓒ연합뉴스

'찰칵'.


쿠팡맨 정진영(29)씨는 서울시 강북구 한 가정집 현관 앞에 물품을 놓아두고, 뒷걸음질로 나오면서 고객에게 보낼 인증사진을 찍었다. 한 집 배송이 끝나면 튕기듯 달려 나가 다시 차로 돌아온 정씨는 숨이 차 헐떡이면서도 다음 집으로 이동해 배송 작업을 이어나갔다. 한 집에서 다음 집으로 배송하는 시간은 총 3분이 걸렸다.


하룻밤 사이 정씨는 180가구에 물품을 로켓처럼 배송한다. 가구별로 배송 건수는 180건이지만 실제 택배 물량은 300여 개에 달한다. 정씨가 실어 나르는 물품은 쌀 5포대, 음료수 8박스 등 다양하다. 때로는 중량이 무거운 가구를 옮기기도 한다. 중량이 무거워도 추가 수당은 별도로 받지 않는다.


정씨는 2016년에 입사해 2년 전부터 새벽배송 업무를 시작하면서 낮과 밤이 바뀐 삶을 살고 있다. 매일 밤 9시 30분부터 다음날 7시 30분에 배송을 마친다. 남보다 튼튼해 아직 크게 아픈 곳이 없다고 자부하는 정씨조차도 새벽배송 업무 이후 역류성 식도염을 얻었다. 수면장애도 생겨 잠에 잘 들지 못한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기계가 아닌 쿠팡맨들이 로켓처럼 움직여야 가능한 서비스다. 정씨는 "로켓이라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로켓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정말 기계인 것처럼 우리를 취급하고 있다"며 "'쿠팡맨이라면 무조건 빨리 최소 몇 개는 배송해야 한다'가 아니라 기상악화, 컨디션 난조 등을 고려해 안전하게 배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쿠팡맨 사망일지.ⓒ데일리안

쿠팡은 협업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지역 쿠팡맨 30명이 1개 조(캠프)로 구성된다. 쿠팡맨들 가운데 배송 마감 시간 안에 할당된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다른 조원들이 추가 업무를 해야 한다. 쿠팡맨들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어떤 무리를 해서라도 자신에게 할당된 배송을 완수하려고 노력한다. 협업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강제성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경쟁을 부추기는 상대평가 제도도 쿠팡맨들이 과로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쿠팡맨들은 상대평가로 누적돼 분기마다 점수를 받는다. 점수에 따라 정규직 전환, 계약직 연장, 승급 심사가 이뤄진다. 그 결과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하는 비정규직 계약직 쿠팡맨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무급 휴게시간에도 배송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1년 넘게 새벽배송을 전담하다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한 고시원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쿠팡맨 이모(48)씨도 계약직 직원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쿠팡맨은 "비정규직은 평가를 잘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무급 휴게 시간조차 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씨 동료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씨 역시 무급 휴게 시간에도 쉬지 않고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과로 환경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쿠팡은 "고인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면서도 "지난 12주간 고인의 근무일수는 주당 평균 약 4일이었으며 근무시간은 약 40시간이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합의기구가 권고한 주당 60시간 근무에 비해서 낮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쿠팡 규탄 기자회견하는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연합뉴스

그러나 이씨에 대한 부검 결과 '뇌출혈이 발생했고 심장혈관이 많이 부어올랐다'는 1차 소견이 나왔다. 심혈관계질환은 전형적인 과로사 질환의 한 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또 뇌심혈관질환의 과로사 판단 시 야간근무의 경우 주간근무의 30%를 가산해 업무시간을 산출하게 돼 있는데, 이씨의 경우 매일 저녁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심야 시간대에 일했다. 따라서 주간근무의 30%를 가산하면 고인의 근무 시간은 약 52시간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3월 경기도 안산에서 40대 쿠팡맨이 새벽배송 업무 도중 숨진 이후 이날까지 불과 1년 동안 총 7명의 쿠팡맨들이 세상을 떠났다. 모두 쿠팡에서 물류센터·택배 업무를 하던 20대부터 50대였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쿠팡의 사고재해(사망 포함) 현황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이 사고재해로 판정한 건수는 2018년 193건, 2019년 334건, 2020년 758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해 고강도 장시간 심야배송을 하지 않도록 야간 근로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노동시간이 길어지거나 심야 노동의 업무 강도가 높으면 과로사할 가능성이 있다"며 "심야배송 서비스를 소비자의 수요로 해야만 한다면, 심야배송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택배 기사 한 명이 맡는 할당 업무량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장은 "과거에 임시직 개념으로 이해됐던 배송업무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정착돼 가는 과정"이라며 "일주일에 4일 이상 연속 심야배송 제한, 고강도 근무 이후 24시간 최소 휴식 시간 보장, 심야 근로 교대제 도입, 주기적인 근로자들의 건강 검진 등 근로자들이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직업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야간 근무 관리를 체계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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