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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 ‘삼정(三政)의 문란’과 망국(亡國)의 기억


입력 2020.11.26 08:00 수정 2020.11.25 15:41        데스크 (desk@dailian.co.kr)

법무부 장관 직위 이용해 할 수 있는 모든 일 다 해…트럼프 급

세계적 희귀 케이스…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 ‘하나님이 보우하사’

조선조 망한 것…‘삼정의 문란’과 함께 ‘과거제도(科擧制度)’의 붕괴

‘무한경쟁시대’…내부 혼란스러워 국민 분열하면 나라는 망조 든다

삼정의 문란은 조선 말 안동 김씨 득세 시대에 전정, 군정, 환곡 등 3대 재정, 행정을 둘러싼 정치 부패를 말한다.ⓒ이정현tv 화면캡처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사상 초유의 일’이 또 벌어졌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정지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추미애 장관이 ‘열일’하고 있다. 추 장관이 신기록을 몇 개내 해 낼지 기대가 크다.


이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시대 ‘비대면’이란 시대정신을 스스로 실천해 국민과 대면하지 않기로 작정하셨나보다. 지지율은 계속 하락세다. 어떤 이는 추미애 장관의 ‘비호감 이미지’가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일리가 있다. 언제부턴가 추 장관은 “멘탈 갑”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됐다. 아무리 비난을 받아도 눈 한번 까닥 안 한다. 자신이 한 조치가 부메랑이 되 돌아와도 초연하다. 그리고 여지없이 적을 향해 반격의 화살을 돌린다. 말이 되던 안 되던 상관없다. 법무부 장관의 직위를 이용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 멘탈만 보면, 흡사 미국 트럼프 대통령 급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설명하긴 부족하다. 그는 일개 장관일 뿐이다. 국민들은 싸움구경에 신물이 나면 났지 더 큰 관심을 갖긴 힘들다. 국민의 불만은 ‘직접적인 손해’가 있어야 분출한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정책’이다. 문재인정권의 23번 부동산정책은 발표할 때마다 순기능은 커녕 역효과만 도드라졌다. 첫 단추를 잘못 꿰니 이후의 단추 꿰기는 모두 악수일 뿐이다. ‘첫 단추부터 다시 꿰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전문가와 국민 사이에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다. 그 고집만 보면 추미애 장관 수백 명 몫이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케이스다.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은 애국가에 나오듯 ‘하나님이 보우하사’이다. 역사에서는 비슷한 경우가 수없이 많다. 당장 조선조 말이 그랬다. 조선은 왕조가 바뀌는 것을 넘어 왜적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지경이 되었기에 더욱 극적이다.


조선 말 ‘세도정치(勢道政治)’는 파국으로 이를 만큼 심해졌다. 그나마 견제기능이 작동하던 ‘붕당체제’는 무너졌고 권문세가 몇 집안이 국정을 장악했고, 그들의 전횡은 끝이 없었다. 사회는 혼란스러워졌고 백성의 삶은 피폐해 졌다. 이는 거듭된 ‘농민봉기(農民蜂起)’의 원인이 되었다. 백성에게 직결된 국정실패의 대표적인 것이 ‘삼정의 문란’이다. ‘삼정(三政)’이란 조선조 재정(財政)의 주류를 이루던 전정(田政)·군정(軍政)·환정(還政)을 의미한다.


<전세>는 생산수단이자 자산인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요즘으로 보면 법인세, 소득세, 부동산세를 합한 것이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관리들은 각종 세금을 쉽게 걷기 위해 토지에 전세 외에도 다양한 잡세를 부과했다. 여기에 향리와 수령들의 부정부패까지 겹쳐 농민들의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게다가 지주들은 부담을 소작인들에게 떠넘겨 회피하니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가 심화됐다.


요즘 종부세 고지서를 받은 국민들은 한숨을 넘어 분노를 표한다. 코로나 사태가 정권의 방패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앞은 매일 매일 전쟁터였을 것이다. ‘보유세’와 ‘처분세’를 모두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올리고 공시지가까지 ‘현실화’란 명목으로 급격하게 올리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런 경우, 작은 불씨만 있으면 민중봉기가 재현될 것 같다.


<군포>는 군역의 대가로 내는 포목(옷감)이다. 조선시대 후기 지배층은 갖은 수를 써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군포를 백성들에게 떠넘겼다. 군포 부담을 못 이겨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고 남아 있는 친척이나 이웃들이 대신 군포를 바쳐야 했다. 또 노인과 어린아이들은 군대 의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군포를 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군역은 납세와 함께 국민의 대표적인 의무다. 우리 헌법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무를 합한 것이 군포다. 사회구성원이 이를 공평하게 부담해야 사회는 안정되고 국방은 튼튼해진다. 일반국민이 특권층의 군역 회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얼마 전 추미애 장관이 이런 국민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그의 아들이 미군부대 카투사에서 ‘황제복무’하고, 실질적으로 탈영을 했음에도 부모의 권력을 이용해 법적으로 무마한 것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했다. 모정(엄마의 정리)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섰기 때문이다.


<환곡>은 곡식대여 제도다. 일종의 금융제도다. 본래 백성의 구휼을 위한 제도였는데 조선말로 가면 고리대처럼 이용됐다. 관리기강이 무너지고 수탈강도는 극심해 졌다. 빌리지도 않았는데 갚아야 하는 경우가 예사였으며, 모래가 반이나 섞인 곡식을 강제로 빌려 주기도 했다.


환곡은 요즘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떠오르게 한다. 현 권력층이 비호하는 사기세력이 ‘안전자산에 투자하라’며 노후자금 등 국민이 힘들게 모은 자산을 모아 빼돌려 사익을 챙긴 사기사건이다. 이런 유의 권력형 금융비리가 더 많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어떤 이는 사기를 치고 떠나갔고 어떤 이는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비참해 한다. 국가기관은 이들의 사기에 조력하다가, 사건이 터지자 방관하거나 은폐한다. 환곡의 폐해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조선조가 망한 것은 ‘삼정의 문란’과 함께 ‘과거제도(科擧制度)’의 붕괴가 큰 원인이다. 국가공무원의 공정한 임용에 대한 믿음이 깨지며 신분상승의 꿈은 사라졌다. 절망한 선비들은 피폐해진 민중과 함께 봉기하게 됐다. 가스가 가득 차 있는데 불씨를 만난 것이다. 조국 사태와 의대생 증원 문제 등에서 ‘음서제(蔭敍制)’가 다시 등장하며, 우리사회에서 ‘공정’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편법, 탈법을 동원할 수 없고 불법을 저지르고도 무마할 힘이 없다면, ‘부끄러운 부모’가 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삼정의 문란’이 곧바로 조선조 망국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때는 ‘충효(忠孝)’를 중시하고 신분제도가 사회의 근간이 되는 유교사회였다. 유교사상은 민초들에게 까지 뿌리 내리고 있어 사회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세계적으로 ‘제국주의 시대’가 아직 도래(到來)하지 않은 것이다. ‘쇄국정치’와 ‘세도정치’는 짝패다. 우물 안 싸움에선 정권이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제국주의시대 팽창정치가 횡횡하자 떵떵거리던 동아시아 왕조는 ‘종이호랑’이 일 뿐이었다. 중국도 그랬으니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제국주의 시대’ 이상의 국제적 ‘무한경쟁시대’다. 내부가 혼란스러워 국민이 분열하면 나라는 망조가 든다. 조선조 말기에도 우국충정으로 직언을 하는 선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사약을 받거나 감옥에 갇혀 고신(拷訊)을 당하고 귀향을 갔다. 지금의 검찰총장 탄압을 보면 역사는 역시 반복되나보다.


베네수엘라의 실패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석유도 없는 우리나라는 더욱 처참할 것이다.


글/김우석 정치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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