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위원 분리선출, 의결권 제한 사례 전무
이스라엘, 외부주주 초강력 견제장치 존재
다중대표소송, 지분율 100% 취득시만 인정
"공정경제3법(기업규제3법)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한 개혁 법안이다. 재계에서 가장 반대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만 하더라도 미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더 강력한 제도를 갖추고 있다. 기회가 되면 구체적으로 설명 드리겠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15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 공식석상에서 줄곧 '기업규제3법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발언해온 김 원내대표는 규제법을 적용한 해외 사례를 경제계에 설명해주겠다고 나섰다. 아직까지 이와 관련된 설명이나 해명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선진 자본시장의 기준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 전문가들에게 문의한 결과 경제 선진국들 자본시장은 오히려 기업규제3법 내용과 동떨어진 실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기업규제3법 중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대주주 의결권 제한을 동시에 이행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 곳도 없었다. 이사회 중심 경영에 따라 회사 중요 사안들을 이사회에서 결정하고 감사위원은 이사회 구성원 중에서 선출하는 것이 글로벌 기업들의 추세였다.
다만 안전장치 하에 제도 한 가지씩 시행하는 사례는 있었다. 일본의 경우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있지만 의결권 제한 규제를 두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지배주주를 포함한 다수결을 원칙 삼고, 소수 주주 과반수 찬성으로 승인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추가적인 단서 조항도 있다. 이재혁 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이스라엘의 경우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지만 2% 초과 주주가 반대한다면 그 사외이사 후보는 선임될 수 없다"며 "이같이 외부 주주에 대한 초강력 견제장치가 존재하고 있어 경영권을 흔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업규제3법 개정 찬성 진영에서 대주주 의결권 제한 사례로 이스라엘을 예로 들었는데 이스라엘은 선진 자본시장 아니며 글로벌 거대기업이 전무한 나라"라며 "세계 주류 국가들의 평균이 아닌 희귀 사례로 불필요한 논쟁은 그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여당은 기업이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동시에 감사위원 1명 이상을 기업 외부에서 선출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연내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경제계는 기업규제3법 중에서도 이 두 가지 조항에 가장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완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일각에서 감사위원 1명을 분리선임하는 게 무슨 그리 큰 문제냐고 주장하지만, 이는 기업 실제를 모르는 이야기"라면서 "감사위원은 감사 역할도 하지만 이사로서 기업의 중대한 의사결정과 사업전략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 외부 투기세력을 대변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면 기술유출은 물론 기업경영에 중대한 결정을 늦추거나 왜곡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중대표소송제의 경우 영미에서 판례로 인정되고 있으나 사례는 가뭄에 콩 나듯 하다. 미국의 경우 50개주에서 회사법에 다중대표소송을 입법화한 주는 전무하다.
일본은 모회사가 자회사 주식지분율 100%를 취득하는 경우에만 자회사 경영진들을 상대로 책임 추궁을 할 수 있다. 완전한 지배 관계 속에서 자회사 이익이 전부 모회사 이익이 되는 구조만 허용한 것이다. 여기에 자회사가 모회사 자산총액의 20% 이상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는 이중장치까지 뒀다.
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석좌교수는 "회사법을 가진 모든 나라들이 주주대표소송제도를 규정하고 있지만 다중대표소송은 규정하는 나라는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도에 불과하다"며 "다중대표에 대해 각국 입법자들이 냉담한 이유는 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 검사권을 행사하고 소수주주 보호 장치가 있어 다중대표소송 도입이 필요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정부·여당의 상법개정안은 이런 기준 없이 모회사 지분 0.01%(상장사 기준) 이상을 보유한 주주라면 모회사뿐만 아니라 모회사가 50% 이상 출자한 자회사 경영진에 대해서도 소송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소 제기 요건만 대폭 완화하면서 자회사 주주의 주주권 침해 여지가 매우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2081개 상장사 중 국내 자회사를 보유한 1574개사(코스피 663개사, 코스닥 91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될 경우 상장사의 소송 리스크가 3.9배 급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재혁 본부장은 "일본법을 기준으로 하면 카카오 자회사 중 다중대표소송 기준에 들어오는 회사가 없다"며 "그러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카카오대리, 카카오택시 등 무려 46개가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데 이게 세계적 추세이고 합리적인 법안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