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RIPA 인용해 ‘한동훈 방지법’ 합리화
테러방지·국가안보·국익 위해 2000년 제정
영국서도 인권·사생활 침해 논란 큰 법률
윤석열과 신경전 벌이다가 또 무리수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영국의 수사권한규제법(RIPA)를 근거로 '휴대폰 비밀번호를 내놓지 않는 피의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근거로 든 RIPA가 영국에서도 인권침해 논란이 크고 테러방지 등 국가안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유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 장관은 12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영국 수사권한규제법은 2007년부터 암호를 풀지 못할 때 수사기관이 피의자 등을 상대로 법원에 암호해독 명령허가 청구를 하고 법원의 허가결정에도 불구하고 피의자가 명령에 불응하면 국가안전이나 성폭력 사범의 경우 5년 이하, 기타 일반사범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 밖에 인권국가 프랑스, 네덜란드, 호주에서도 암호해제나 복호화 요청 등에 응하지 않는 경우 형사벌로 처벌하는 법제를 가지고 있다"며 "우리도 시급히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에 대한 실효적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서 이날 오전 추 장관은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사례와 같이 피의자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영국 등 외국 입법례를 참조하여 법원의 명령 등 일정요건 하에 그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를 두고 헌법상 보장된 피의자 방어권에 반하는 위헌적 내용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금태섭 전 의원은 "인권유린"이라고 했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차라리 고문을 합법화하라"고 비꼬았다. 이 같은 비난이 나오자 추 장관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영국의 RIPA를 사례로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도 RIPA에 대한 '인권침해' '사생활침해' 논란이 크다는 점에서 적절한 사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히 영국의 감청기관이 해당 법을 근거로 대규모 민간인 정보를 수집한 것이 드러나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인권침해 판결을 받았었다. 테러방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률의 내용을 한동훈 검사장 사례에 적용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또한 검찰개혁을 통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과도 어긋난다. 진 전 교수는 "민주당은 더 이상 자유주의 세력이 아니다"며 "개인의 방어권을 부정하고,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역사해석을 법으로 강제하는 자유주의세력이 어디있느냐"고 질타했다.
추 장관이 과거 인권침해를 이유로 테러방지법을 반대했다는 점에서 일관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추 장관은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국민들은 정보기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의식하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존중된 삶을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며 "죄형법정주의의 근본적인 의의는 국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승인되는 국가권력의 자기제한인 것"이라고 했었다.
정의당 장혜영 원내대변인은 추 장관의 과거 발언을 그대로 읽은 뒤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법무부 수장으로서 추미애 장관이 검찰 총장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자신의 본분을 이렇게 망각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행태를 보인다면 국민들께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추미애 장관은 국민의 인권을 억압하는 잘못된 지시를 당장 철회하고 이에 대하여 국민께 사과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