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정부, '원점 재논의' 합의… 의정협의체 구성키로
전공의 단체들 "동의 없이 진행해 절차상 문제 있어"
의과대학 정원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의료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으로 시작된 ‘의사 총파업’ 사태가 지난 4일 보름 만에 봉합됐다.
그러나 전공의 단체에서 "의협의 단독 결정이지 전공의는 합의한 적 없다"며 반발하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남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달 21일 정부의 의료 정책에 반대하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이어서 전임의(펠로)도 파업에 동참해 개업의부터 전공의, 전임의 등 대부분의 직역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수련병원 152곳의 전공의 휴진율은 85.4%로, 집단 휴진에 참여한 인원은 7431명이다. 같은 날 전임의는 621명이 집단휴진에 참여해 29.7%의 휴진율을 보였다.
전공의와 전임의까지 파업에 동참하면서 암 환자 등 중증 환자들까지 제때 수술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왔다. 서울 주요 대학병원이 외래 진료를 축소하고, 일부 병원은 수술 건수가 절반 정도 줄기도 했다. 전공의가 없는 응급실의 경우 교수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섰다.
밤샘 협상 끝에 복지부-의협도 합의문 서명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밤샘 협상 끝에 4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퇴계로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합의문 서명식을 가졌다.
의협은 서명식 이후 집단휴진을 중단하고 진료현장에 복귀했다. 지난달 25일 전공의와 전임의를 비롯한 의사들의 집단휴진이 시작된 지 보름 만이다.
복지부와 의협은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의학교육, 전공의 수련체계 등의 발전을 위해 ‘의정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갈등의 핵심이었던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문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의대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양측은 협의체에서 지역의료 수가, 필수의료 육성, 전공의 수련환경의 실질적 개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 개선, 의료전달체계 확립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의료계가 문제를 제기한 의대증원, 공공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진료 등 4대 의료정책의 발전적 방안에 대해 의정협의체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다만 전공의들이 강력히 요구했던 '원점 재검토'나 '정책 철회'는 명문화되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전공의 단체가 보건복지부와 의협의 합의문 서명식장을 점거해 서명식 장소가 급하게 변경되기도 했다.
이날 오후 1시 전공의 30여명이 "졸속 행정도, 졸속 합의도 모두 반대"라고 적힌 항의 문구를 들고 복도에서 항의를 시작했다. 오후 1시 10분에는 전공의 70~80여명이 모여 건물 엘리베이터와 복도를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1시30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24층에 도착했으나 전공의들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몰려가 장관이 내리지 못해 서명식 장소를 변경하고 시간도 늦춰졌다.
반쪽짜리 합의 논란... 전공의 단체 "동의한 적 없다" 반발
의·정이 합의문에 서명하며 장기 의료공백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막았지만 전공의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반쪽짜리 합의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공의·전임의로 구성된 젊은 의사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합의문 서명 일정이나 구체적인 합의 내용에 대해 들은 바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의협과 달리 단체행동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내비쳐 의료 공백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이 전공의 설득에 나섰지만, 전공의 단체는 파업을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은 유튜브를 통해 대회원 담화문을 발표하며 "젊은 의사들의 당혹감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철회'라고 하는 두 글자를 얻는 과정에서 얻게 될 것과 잃게 될 것을 냉정하게 고민하고 설령 오해와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협회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고발 당한 전공의를 비롯해 복지부가 고발을 미루고 있는 수백명의 전공의, 오늘을 마지막으로 시험의 기회를 잃게 될 의대생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건 없는 복귀와 구제가 가능해진 만큼, 선배들을 믿고 진료현장으로 돌아가 줄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쟁의 결과물로서 얻어질 대화와 논의의 장에서 우리의 역량을 동원하여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계가 분열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전협 비대위는 "결정권은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 회장인 최대집 회장한테 있다"면서도 "최종 협의를 할 때 최대집 회장과 박지현 대전협 회장이 동시에 서명하기로 의결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조만간 전공의들 의견 수렴해 공식입장 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