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소득주도성장’…코로나의 사악한 축복으로 정부 실정 감춰져
재벌 개혁 내건 ‘공정경제 3법’…제2의 소득주도성장 될 것
지난 주 임기 개시 48일 만에 열린 국회 개원식.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대통령이 제시할 부동산 대책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내 관심을 더 끈 것은 대기업 관련 법안에 대한 입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 감독법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했다. 연설을 듣자마자 든 생각은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였다.
문재인 정권은 어떻게 돈을 걷어 어디에 쓸 지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러는 사이, 누가 돈을 벌 지에 대한 당연한 질문은 관심에서 잊힌 지 오래다.
코로나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전반에 걸쳐 상상 못할 타격을 주었다. 국가의 역할, 특히 정부 재정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부각되었다. 지금 각 나라는 예외 없이 무제한적으로 돈을 풀고 있다. 오늘의 위기 수습 없이 내일은 없다는 식이다. 논란은 있지만 불가피한 조치라 판단된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일 이후를 위해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바로 누가 돈을 벌 지, 어떻게 해야 돈을 벌지 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그간 문재인 정권은 통계를 무시하고 분식하고 조작하여 경제 실정을 덮어왔다. 그러나 ‘코로나의 이상한 축복’으로 통계를 무시-분식-조작하는 노력조차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모두 코로나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도 어렵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비상한 계획과 정책으로 앞으로 우리 경제는 좋아질 것이다.”고 큰소리치면 그만이 되었다. 그 결과 국민들은 정부에 더 의존해서 살아가든지 아니면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국가 부채와 가계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경제는 중소규모 개방형 수출경제이다. 내수를 아무리 강조해도 수출이 안 되면 지금의 경제 규모를 유지할 수 없다. 유지할 수 없으면 경제는 내려앉게 마련이다.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하다. 나아가 이들과 중소기업이 만들어낸 거미줄 같은 하청-협력 관계는 수많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내수를 떠받친다.
그간 대기업이나 그 총수 일가가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거나 일부 부정적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경쟁력을 잃거나 기업인이 의욕을 상실하면 수출이 무너지고 일자리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어김없는 사실이다.
이제 문재인 정권의 경제 시즌 2가 시작된다. 그 이름이 공정경제이든 평등경제이든 상관없이 대기업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 소위 재벌개혁 드라이브가 펼쳐질 것이다. 재벌 개혁 핵심 추진체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이다.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각 기업의 진로와 사활을 결정될 것이다.
문재인 정권 핵심들은 한국 경제는 대기업 문제이고, 대기업 문제는 지배 구조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한줌도 안 되는 총수 일가가 대기업을 지배하면서 온갖 폐해를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총수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가 아니라 집단지성 중심의 지배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집단지성의 요체는 다름 아닌 국민이 선출한 정부(스튜어드십 코드)와 노동자(노동자 추천 이사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 ‘완벽하고 순수한 지배구조’로 바뀌면,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아름답게 상생하고 외국 기업을 상대로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여기에서는, 소위 공정경제 3법의 내용을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기업들의 대응 전략은 분명해 보인다. 기업 경영에서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난리로 인해 기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기업이 느끼는 가장 큰 불확실성은 바로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이다. 기업에게 지배구조는 주춧돌이나 마찬가지다. 지배구조가 불확실해지면, 그 어떤 경영 계획도 투자 집행도 뒷전일 수밖에 없다. 어느 누가 자신의 지배권이 흔들리는 마당에 제대로 된 기업 활동에 나설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전문가가 지적하듯이 기업 지배구조에 왕도는 없다. 지배구조는 당위나 규범의 문제가 아니고 해당 기업의 처지와 효율의 문제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기업이나 전문가들의 우려와 반대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경영권이 불안해지면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기업 활동은 더욱 위축되고 외국 투기 자본 공격에 속절없이 당할 수 있다고 하소연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시즌 1에서 폭망한 경제 실정을 덮기 위해서라도 ‘경제를 철저하게 정치화하여’ <촛불 민심에 의한 재벌 개혁>을 가차 없이 밀어 부칠 것이다. 그것도 2020년 올해 정기국회 안에 말이다.
아 참, 어제 문대통령은 시중에 풀려 있는 3000조 원의 유동자금이 부동산이 아닌 생산투자에 유입되도록 조치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뉴딜펀드에 금융과 기업이 참여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젠 대놓고 은행과 기업들에게 공공 부문에 투자하라고 압박할 태세다. 그간 기업이 투자를 안 해 유동자금이 모두 부동산 시장으로 갔다고 핑계를 댈 모양이다. 도대체 기업이 왜 투자를 주저하는지 몰라서 그러는가? 바로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간 문재인 정권이 밀어부친 반기업 정책과 전 세계적인 코로나로 인해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면적인 지배구조 개편까지 강행하겠다는데 어느 기업이 투자를 계획하고 집행할 수 있겠는가?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박원순 사태 그리고 지금의 검언유착 조작 의혹 사태 등에서 보았듯이 ‘공정과 정의의 회복’은 미룰 수 없는 지상 과제이다. 또한 코로나 사태로 빈사 상태에 빠진 민생 문제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말이다. 이 모든 것을 해내기 위해선 누군가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정권이 몽둥이를 든 들 손발 묶어 놓고 나서 돈 벌어오라고 하면 누가 돈을 벌어올 수 있단 말인가?
글/ 김용태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