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기준 따라 비리 부인하는 것 넘어 기준 자체 무너져
과거 운동권의 선악이원론·유물론적 관점이 깔려 있는 것
법을 어겨도 자신이 여전히 정의로울 수 있다 생각하는 것
정권·의회 장악한 586세력, 아직 학생운동 시절 '상상계'에 사로잡혀 있어"
진중권 전 동양대 명예교수가 10일 국민의당이 주최한 '온(on) 국민 공부방' 세미나에 참석해 '우리 시대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진 전 교수는 이 자리에서 조국 사태를 거론하며 "비리를 옹호하기 위해 정의의 기준 자체를 무너뜨리려 했다"고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조국 사태의 독특한 점은, 비리가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다. 정의의 기준에 따라 비리를 부인하는 것을 넘어, 아예 비리를 옹호하기 위해 정의의 기준 자체를 무너뜨리려 한 데에 있는 것"이라며 “포스트-진리의 시대는 포스트-윤리의 시대이기도 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진 전 교수는 "이 바탕에는 과거 운동권의 독특한 윤리의식이 깔려있다"며 "과거의 운동권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 권력을 잡은 결과 과거의 습속이 정권운영에 그대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진 전 교수는 "이 운동권 마인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선악이원론이다. 자유주의적 관념에 따르면 정치란 이해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해결하는 과정이지만, 운동권은 정치를 기본적으로 선악(정의/불의)의 대결로 보는 것"이라며 "고로 그들의 정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군을 방어하고 적군을 제압할 때 세워진다. 이들이 정의의 기준을 무시해 가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아군을 방어하는 것은, 그것을 자기들 고유의 정의를 세우는 길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진 전 교수는 "둘째는 유물론적 관점으로, 이들은 법과 도덕과 윤리를 사회보편의 이익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특수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본다. 그것들은 존중될 것이 아니라 파괴되어야 할 것 으로, 궁극적으로는 자기들 것으로 대체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라며 "자기들이 곧 선이요 정의요 나아가 보편이익의 진정한 대변자라 굳게 믿기에, 자기들을 향한 검찰의 수사나 기소는 검찰조직의 특수이익을 지키는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진 전 교수는 "독재정권 하의 사법은 결코 정의롭지 못했기에 국가보안법이나 집시법 같은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 당시에는 불법이 아니라 외려 정의로 여겨졌다"며 "그 시절 정의는 법률을 위반하는 자의 편에 있었고, 그를 처벌하는 법은 불의의 편에 있었다. 이 인식이 사회가 민주화 된 후에도 습관처럼 남아있기에 법을 어겨도 자신이 여전히 정의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거론하며 진 전 교수는 "최근 법을 어긴 자들이 외려 검찰을 질타하는 이상한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최 대표가 재판 도중에 법정을 떠나려는 비상식적인 행위를 한 것도 그 때문"이랴며 "한 마디로 잘못은 자기가 아니라 기일변경을 허용하지 않은 법원에 있다는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진 전 교수는 "최 대표의 태도는 독재정권 시절 법정에서 민주투사들이 가졌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법을 어겨도 결코 반성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저 거기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사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할 뿐이다. 정권을 잡고, 의회를 장악한 586세력은 아직도 학생운동시절의 '상상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진 전 교수는 "이를 정신분석학에서는 ‘오인’(méconnaissance)이라 부른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정의의 기준이 무너져 내린 것은 이들 586세대가 자신의 정체성을 오인한데서 비롯된현상"이라며 "산업화세대는 고령화됐고, 그들을 대체한 민주화세대는 이미 시대정신을 잃었다. 한국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들 젊은 세대와 함께할 장기적인 기획이 필요하며, 그 발전은 당연히 사회의 모든 계층을 포용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