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 연출, 젊은 세대 공감할 수 있는 창극 역점
멈췄던 국립극장, 14일부터 창극 '춘향' 선보여
"판소리의 어마어마한 아름다움과 깊이에 심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역할이죠."
김명곤 연출이 현대적 감각을 입혀 새롭게 선보이는 창극 '춘향'이 베일을 벗었다. 국립극장 창설 70주년 기념 공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춘향'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순수한 감정인 '사랑'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김 연출은 10대, 20대 관객들이 작품의 스토리와 인물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혼인서약증서를 과감히 찢는 춘향이의 모습이 이번 작품의 달라진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3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춘향' 프레스콜에 참석한 김 연출은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는 그 시대는 물론,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사랑일 것"이라며 "스토리나 극의 템포도 빨라지고 젊은이들의 감성이나 감각에 맞는 이야기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 연출은 국립창극단이 본질로 돌아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연출은 "창극단은 뮤지컬이나 연극과 다르다. 판소리를 기본으로 해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며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할 수 있는 작품을 굳이 왜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작품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관객들이 판소리 속에 담긴 어마어마한 아름다움과 깊이에 심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립창극단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 4월 부임한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유수정이 선보이는 첫 신작으로 "창극은 동시대의 의식과 감성에 맞춰 변화하되 뿌리인 판소리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유 감독의 비전을 담아낸다. 유 감독은 음악적 섬세함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만정제 '춘향가'를 바탕으로 동초제·보성소리에서도 소리를 가져와 특색 있는 소리를 짰다.
유 감독은 "관객이 바뀌고 시대가 바뀐 만큼 극도 바뀌고 소리도 바뀌었다"며 "김 연출이 요즘 사람들이 보고 공감하는데 작품을 만든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바뀌어도 소리만큼은 보존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양 악기를 덧입히고 의상도 현대적인 색상으로 만들어 창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유 감독은 "옛날에 했던 장면들이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무대도 예쁘고 춘향이와 이몽룡도 통통 튀는 신선한 매력을 느껴 울컥하더라"고 만족감을 전했다.
무대 또한 현대적으로 구성한다. 뮤지컬 '엑스칼리버'의 무대디자이너 정승호를 필두로 뮤지컬 '웃는 남자'의 조명디자이너 구윤영, 국립창극단 '패왕별희'의 영상디자이너 조수현,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의상·장신구디자이너 이진희 등 최고의 창작진이 의기투합해 매혹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춘향 역에는 국립창극단 대표 주역 이소연, 신예 소리꾼 김우정이 더블 캐스팅됐다. 맑은 성음과 풍부한 연기력을 갖춘 이소연은 창극 '춘향 2010'(2010)과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2014)에 이어 이번에도 춘향으로 낙점됐다. 국립창극단이 지난 2월 실시한 공개모집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김우정은 TV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젊은 소리꾼이다.
이소연은 "올해까지 서약서를 찢은 건 처음이다. 종이 한 장에 내 마음을 맡기지 않는다는 춘향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아 좋았다"고 이번 작품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우정은 "당대 최고의 명창이 거친 춘향 캐릭터라 어깨가 무겁다. 잘 해야겠다는 생각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지 연구도 많이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디션을 통해 김우정을 발굴한 김 연출은 "10대에는 소리가 무르익어서 주인공을 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있는 가수를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20대 배우들은 많이 길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열심히 소리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줌으로써 판소리계 수많은 인재들이 희망과 꿈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춘향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면모도 쟁쟁하다. 몽룡 역 김준수, 월매 역 김차경·김금미, 변학도 역 윤석안·최호성, 향단 역 조유아, 방자 역 유태평양 등 선 굵은 배우들이 캐스팅된 가운데, 백인백색 매력 국립창극단의 모든 배우와 연주자가 총출동한다.
한편, 그동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모든 공연을 중단했던 국립극장은 '춘향'을 통해 기지개를 켠다. 국립극장 측은 "이번 공연에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기 위해 '객석 띄어 앉기'가 시행된다"고 밝혔다. 14일부터 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