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갑' 질병후유장해 특약, 기준 완화에 존폐 기로
13년 만에 장해분류표 개정…장해 인정 폭 크게 넓어져
높은 손해율에 지금도 3개사만 판매…"곧 사라질 수도"
병을 앓은 뒤 신체 일부를 잃거나 기능이 떨어졌을 때 보장을 제공하는 질병후유장해보험이 존폐기로에 놓였다. 금융당국이 관련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장해 기준을 크게 완화하기로 하면서 손해를 우려한 보험사들의 판매 기피 현상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영업 현장에서는 높은 가격 대비 성능비로 소위 가성비 갑 상품이라 불리던 질병후유장해 담보 상품이 조만간 자취를 감출 것이란 얘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온다.
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4월 신규계약부터 개정된 장해분류표가 적용될 예정이다. 장해분류표는 장해보험금 지급 시 활용되는 기준을 가리킨다.
금감원은 현행 장해분류표가 변경 없이 너무 오래 사용되고 있어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해 개정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장해분류표가 개정되는 건 2005년 이후 13년만이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장해임에도 현행 장해분류표 상 판정기준이 없어 장해로 인정받지 못하던 보험 가입자들에게는 혜택이 예상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금까지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어지러움증을 겪고 있어도 장해 기준 미비로 보험 보장이 어려웠는데, 개정안에는 귀의 평형기능 기준이 도입되면서 장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또 직장생활이 불가한 호흡곤란에도 불구하고 폐는 이식했을 경우에만 장해를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 폐질환 등으로 인한 호흡곤란 관련 장해 기준이 추가되면서 장해보험금 지급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문제는 장해 판정 기준이 대폭 확대되면서 보험사들이 이와 관련된 상품 판매를 축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가장 먼저 사라질 것으로 꼽히는 상품이 질병후유장해보험이다.
암보험이나 실비보험에 특별약관 형태로 가입할 수 있는 이 보험은 질병 치료 후 생긴 장해를 보장해준다. 예를 들어 암세포가 폐나 위로 전이돼 문제가 생겼다면 이는 질병과 관련된 후유장해로 볼 수 있어 질병후유장해 특약 가입 시 보험금 수령이 가능하다.
질병후유장해보험은 이 같은 큰 장해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흔히 발생하는 장해 사례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귀가 안 들려 보청기를 하거나 무릎에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것도 질병후유장해 특약 보험금 지급 대상에 포함된다.
이처럼 가벼운 질병으로도 보험금을 내줘야 한다는 점에서 보험사에게 질병후유장해 특약은 부담이 큰 상품이다. 이에 보험업계에서 해당 특약은 축소되거나 아예 폐지되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현재 질병후유장해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는 NH농협손해보험과 한화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등 세 곳뿐이다. 생명보험사들은 모두 판매를 중지했다.
그런데 이번에 장해분류표 기준이 완화되면서 질병후유장해 특약이 존폐 기로에 서게 될 전망이다. 장해 인정 폭이 훨씬 넓어지면서 감내해야 할 보험금 지급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인 보험사들이 판매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것이란 얘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위험률 상승 등으로 이미 질병후유장애 특약의 보장 범위는 과거에 비해 축소된 상태"라며 "새로운 장해분류표 시행 이후 손해율이 얼마나 변하느냐에 따라 유지냐 축소냐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손해보험사 소속 보험설계사는 "급속도로 진행되는 인구 노령화에 더불어 병을 앓고 나서 쉽게 생길 수 있는 장해에 대한 보장이 가능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질병후유장해 특약은 보험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누려 왔다"며 "하지만 안 그래도 높은 손해율에 이번 장해 기준 완화까지 더해지면서 보험사로서는 질병후유장해 상품 판매 축소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고, 결국 해당 특약을 판매하는 보험사가 사라질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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