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조선 등 상여금 월할 지급 논의…노조와 협상 진통
새해를 한 달여 앞두고 최저임금 문제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당장 내년부터 최저임금 기준이 16.4% 오른 7530원이 되면 중소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영향권에 드는 만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인상률이야 돌이킬 수 없지만 연봉 4000만원 이상의 고임금 근로자도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상여금 등을 산입범위에 포함시키는 최저임금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편집자 주>
자동차·조선 등 상여금 월할 지급 논의…노조와 협상 진통
‘고연봉 최저임금’이라는 모순된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뜯어 고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대가 극심한 상황에서 마냥 희망적인 결과만 기다릴 수는 없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들은 일찌감치 ‘플랜B’를 준비하고 있다.
당장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밖으로 나가 있는 상여금을 쪼개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현행 최저임금 산입 범위는 ‘매월 1회 이상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임금 또는 수당’으로 규정돼 있다. 이 규정을 고칠 수 없다면 두 달에 한 번씩 지급하는 상여금을 쪼개 매달 지급하는 방식으로 규정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의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임금체계를 정비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국내 자동차와 조선업계를 대표하는 대규모 사업장인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에서 이같은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4년부터 임금체계 개선을 위해 노조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노사가 추천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현대차 임금개선 자문위원회는 지난 2015년 3월 노사에 ▲기본급 중심의 임금체계 및 임금구성 단순화 ▲직무, 역할의 가치에 따른 수당 단순화 ▲숙련급 도입 ▲산정 기준에 의한 성과배분제 도입 등 4가지 임금체계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현대차 노사는 이 때부터 2년 넘게 임금체계 개선을 논의했으나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지난 23일 임금 및 단체협약 본교섭에서 노사는 ‘임금체계 개선 논의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 한다’는 수준의 합의만 이뤄낸 채 구체적 시행방안은 내년 상반기까지 논의 후 적용키로 했다.
임금체계 개선 방향의 핵심은 ‘기본급 중심의 임금체계 및 임금구성 단순화’고, 이는 ‘상여금의 월할 지급’을 전제로 한다.
임금체계 개선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라는 이슈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추진해왔던 사안이긴 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돼야 내년부터 2020년까지 계속해서 큰 폭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최저임금 인상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기준 평균 연봉이 94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워낙 임금 수준이 높아 당장 내년 최저임금이 16.4% 올라도 최저임금 하한선에 걸리는 직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연간 750%에 달하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 복리후생비 등이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따라 2020년까지 계속해서 비슷한 폭으로 최저임금이 오를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임금체계 개선을 통해 상여금 중 두 달에 한 번씩 지급되는 100%의 상여금(연간 600%)을 매월 나눠 지급하는 방식으로만 전환해도 최저임금 규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노조가 상여금을 월할 지급하는 대신 이를 잔업·특근 할증 기준액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잔업·특근 임금은 기본급의 150%가 지급되고 있으나, 상여금을 월할 지급할 경우 기본급+상여금의 150%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미 통상임금 소송에서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즉, 할증 기준액에 상여금을 포함시켜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노조의 요구대로라면 현대차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한 기아차와 마찬가지로 잔업·특근 임금을 기존보다 50%가량 더 줘야 한다. 기아차는 이 때문에 생산물량 축소를 감수해가면서까지 잔업은 전면 중단하고 특근도 최소화하는 상황에 몰린 사례가 있다.
회사로서는 임금체계 개선 논의 과정에서 노조측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하고도 패소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 셈이 된다.
현대중공업 역시 상여금의 월할 지급을 추진하고 있지만 노조의 반대로 상황이 녹록치는 않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두 달에 한 번씩 100%, 설과 추석 연휴에 각 50%, 연말에 100% 등 연간 총 800%의 상여금을 지급하고 있다. 신입 직원도 연간 4000원 이상의 임금을 받지만 연 800%에 달하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 복리후생비 등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제외됨에 따라 근속기간이 짧은 일부 직원들은 내년부터 최저임금 기준에 걸린다.
회사측은 이같은 상황을 우려해 지난해 임단협에서 노조에게 두 달에 한 번씩 지급하는 연간 총 600%의 상여금을 매달 50%씩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노조측은 이를 거부한 채 2년째 회사측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노조 입장에서는 현행 상여금 지급체계를 유지해야 회사측이 최저임금 위반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임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 굳이 바꿀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조 측은 “회사가 상여금 50%를 매월 지급하면 기본급이 낮은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문제를 회피할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앞으로 몇 년간 최저임금에 걸리는 인원도 급감한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제도개선 없이 기업들의 개별 노력으로는 불합리한 최저임금 산입범위의 폐해를 피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상여금 월할 지급을 추진하고 있는 회사들은 대부분 강성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라며 “노조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임금이 오르는데 굳이 상여금 월할 지급에 동의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개별 기업들이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임금체계를 정비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하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실질 임금으로 확장하는 제도 개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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