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소방서에는 이런 신고도…"가스 불 꺼주세요"
화재진압보다 생활민원 출동 더 많아…명절 연휴 가스불·문단속 민원↑
"국민의 잠재적 위험 방지…사명감 가지고 연휴도 비상대기 모드 자처"
화재진압보다 생활민원 출동 더 많아…명절 연휴 가스불·문단속 민원↑
"국민의 잠재적 위험 방지…사명감 가지고 연휴도 비상대기 모드 자처"
말벌 퇴치, 닫힌 집 문 열기, 벌레 잡기, 가스 불 대신 끄기, 간판에 떨어진 핸드폰 꺼내기…동네 민원해결사라도 등장해야 할 것 같지만, 명절 연휴도 잊고 현장을 지키는 소방관의 업무이기도 하다. '황당 신고'라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실제 일선의 소방관들은 '국민의 잠재적 위험 방지'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연휴에도 비상대기 모드다.
소방관은 폐허가 된 현장에서 온 몸에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며 현장을 가로지르다가도, 검게 탄 몸을 씻어내고 조심스럽게 가정집에 들어가 가스 밸브를 대신 잠가주기도 한다.
이처럼 시시때때로 바뀌는 환경에서 만능 해결사 역할을 하는 소방관의 모습은 언제라도 위용이 넘치지만 그만큼 위험의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생활민원의 경우 말 그대로 생활 전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루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다소 '황당한' 신고를 받을 때도 많고, 이로 인해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
실제 강원도 속초의 한 소방교가 고양이를 구조하던 중 추락해 사망하고, 경남 산청의 산악구조대 소속 한 소방관이 벌집을 제거하다 벌에 쏘여 숨졌다. 또 광주 서구의 한 소방장은 벌집을 제거하다 2만 2000볼트 고압선에 감전되기도 했다.
이에 여론은 "말벌 퇴치는 양봉 전문가를 시켜야지 왜 소방관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문 따고, 동물 구조하고, 벌잡고... 소방관 역할은 어디까지인지"라며 개탄했다. 이는 수면 위로 떠오른 소방공무원 처우 문제가 한 몫 하기도 했다.
실제로 임수경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5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소방관 출동 원인이 화재진압보다 벌집제거와 동물구조가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임 전 의원이 국민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약 103만 66건의 출동건수 중 가장 많은 39만 6822건(38.5%)이 '벌 퇴치·벌집제거'로 나타났다. 이어 동물 구조, 실내·차량·엘리베이터 등 갇힘 사고 처리, 기타 안전조치 순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선의 소방관들에게는 저마다 기억에 남는 생활민원 에피소드가 줄줄 나올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A 소방사는 본보에 가장 기억에 남는 생활민원에 대해 "화장실 하수구에 반지를 씻다 빠뜨렸으니 와서 꺼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 한 번은 벌레를 정말 무서워하는 분이었는데 벌레가 집에 들어와 남편도 없고 어쩔 줄을 모르겠다며 빨리 잡아달라고 민원이 온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A 소방사는 "출동을 망설이게 만드는 신고들이 정말 많다"며 "벌레를 잡아달라고 하는 경우는 출동 전 생각을 많이 하게 하기도 하지만, 정말 병적으로 벌레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힘든 일이 될 수 있으니 출동을 안 할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A 소방사는 명절을 앞두고 집중되는 생활민원에 대해 "가스레인지 불을 대신 꺼주라는 것"을 첫 번째로 꼽았다. A 소방사는 "고향에 내려가는 분들이 많으니까 집 창문을 닫아달랄지, 가스를 안 잠그고 나왔으니 좀 봐달라는 민원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경우 몇 호인지 확인한 다음 도시가스 밸브를 잠그고, 부득이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경우 집주인(신고자)의 동의를 얻어 실내로 들어가 확인하게 된다"며 "이렇게 하지 않을 경우 방치됐을 시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생활민원 교육이 따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각 부서에서 안전관리교육을 매일 시행한다는 설명이다. A 씨는 "생활민원 교육을 따로 받지는 않지만, 각 부서에서 생활 전반의 여러 사고에 대해 예측하고 토의하며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교육을 진행한다"며 "서로 토론하며 각자의 경험과 의견들을 교환해 이를 토대로 실습도 하고 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사전 조치 교육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A 씨는 "솔직히 말하면 출동하기 전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민원의 경우 '이런 것까지 나가야하나'싶다가도 안 나가면 상황이 어떻게 될 줄 모르니 막상 출동하면서 힘 빠지기도 한다"면서도 "우리끼리 '소방 쪽 말고는 이런 일을 우리 아니면 누가 하겠나. 일반직 공무원이 할 수도 없는 일이고…봉사하는 직업이니 할 수 있는 한 하고, 다소 황당한 민원일 경우에도 나쁘다고 생각 말자'하면서 마음을 다잡을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 속 소방관들의 처우를 더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실제 소방관들의 고유 업무는 화재진압, 구급, 구조 이런 형태의 업무들로 나눠지는데, 생활민원의 경우 공무원들이 시민들의 민원에 대해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의례적인 일로 볼 수도 있지만 너무 사소한 민원이거나 과한 요청일 경우 이로 인해 정작 집중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은 법에서 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자로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소방관들도 합리적·비합리적인 기준의 엄격한 잣대를 통해 국민 안전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통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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