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장동건 "비극과 어둠, 카타르시스 느껴"
박훈정 감독 신작 '브이아이피'서 국정원 직원 연기
"작품 보는 눈 달라져, 이젠 재밌게 하려고 노력"
"비극과 어둠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같은 게 있어요. 사람들이 우울한 노래를 찾아 듣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배우 장동건(45)이 진짜 남자 영화 '브이아이피(V.I.P.)'로 관객들을 찾아온다. 평소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느와르 장르인 만큼, 자신의 존재감을 가장 잘 드러내줄 수 있는 작품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장동건은 "남자라면 다들 자기만의 마음 속 영화가 있지 않느냐. 우리 또래 남자들이라면 다들 그런 게 있을 것"이라며 '원스 어폰어 타임' '스카페이스' 등에 대한 동경심을 드러냈다. 여기엔 '브이아이피'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크다는 뜻도 담겨 있다.
'브이아이피'는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 김광일(이종석)이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이를 은폐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등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 영화다.
장동건은 미국 CIA로부터 북한 고위층 VIP 김광일을 넘겨받아 보호하는 국정원 직원 박재혁을 연기한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혼란스러운 남북관계 속 딜레마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때로는 평범한 회사원 같은 느낌이지만, 구수한 욕설과 화려한 총격신까지 소화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다. 한 가장의 고뇌와 번뇌, 그리고 정의에 대한 갈망, 사회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심리를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하게 드러낸다.
"인물의 배경을 따라가는 게 아니고 사건이 주인공인 영화에요. 그만큼 이미지가 중요했어요. 그래서 박재혁 캐릭터는 스트레스, 짜증, 피곤 이런 단어를 기본 정서로 설정했죠."
하지만 '신세계'에서 보여준 박훈정 감독의 농도 짙은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더욱 수위가 높아졌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장동건은 "연출자의 몫이다. 문제는 잔인한 장면의 존재 이유일 것"이라며 감독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며 "개인적으로 '악마를 보았다'와 '신세계'의 중간 정도 되는 것 같다"고 웃었다.
'브이아이피'는 지난 2013년 '우는 남자' 이후 4년 만의 복귀작이다. 그 사이 '7년의 밤'을 촬영하긴 했지만, 개봉이 뒤로 밀리면서 관객들과 만나는 간격이 그만큼 길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영화계에서 긴 공백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많은 배우들이 긴 공백 속에 관객들 뇌리에서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사실 텀보다는 작품의 성패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전에도 4년간 안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 공백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간 적이 있어요. 하지만 작품이 많이 나와도 관객들이 많이 접하지 못하면 안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화제는 되고 실패하고. 이게 제일 안 좋은 것 같아요."
그만큼 내심 이번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면서도 느와르 장르의 특성상 흥행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느덧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생긴 여유다.
"흥행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은 작품이에요. 19세 관람가이기도 하고, 장르적으로도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죠. 하지만 장르에 충실한 영화이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만족스러워 할 거라고 생각해요."
한때 깊은 슬럼프를 겪기도 했던 장동건은 이제 부담에서 벗어나 영화를 즐기며 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가급적 오래,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그러면서 50년 넘게 배우로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안성기에 대한 존경심도 드러냈다.
"예전엔 성공했을 때 쾌감이나, 실패했을 때 좌절을 많이 못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재미가 없어지는 시기가 왔죠. 지금은 거기서 벗어나 다시 재밌어지는 시기예요. 안성기 선배님처럼 오래 영화를 하고 싶어요."
덧붙여 "늘 그런 순간이 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며 영화 제작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끌리는데 내가 할 수 없을 때 여건이 되면 만들고 싶을 것 같아요. 영화계에서 배우든 제작자든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
세월의 흐름과 경험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배우, 그것이 바로 장동건이지 않을까. 청춘스타에서 중후한 멋을 지닌 중년배우로 거듭난 장동건의 영화인생 2막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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