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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무색케 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철학


입력 2017.08.03 05:34 수정 2017.08.03 17:47        이홍석 기자

"지분에 의한 경영권 무의미...경영권 승계 아직 때 아냐"

삼성물산·삼성생명 등 사업 잘 모르면 전문가에 맡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분에 의한 경영권 무의미...경영권 승계 아직 때 아냐"
삼성물산·삼성생명 등 사업 잘 모르면 전문가에 맡겨

"사업에 대한 의사 결정은 지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사업을 고민하고 그 회사의 미래를 위해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을 아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재판 시작 후 4개월만에 말문을 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신만의 명확한 경영철학을 거침없이 밝히며 경영권 승계에만 매몰돼 의혹을 제기한 특검을 무색케 했다.

오너 지분 확보를 위해 청와대에 부정한 지원 청탁을 했다는 특검의 주장에 숫자로 지배력을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반박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시 김진동) 심리로 진행된 자신과 삼성 전직 임원들에 대한 제 50차 공판에서 "삼성전자나 삼성생명처럼 규모가 큰 회사는 지분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며 "지분으로 경영권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이재용 "대주주인 삼성물산보다 지분 없는 삼성전자 실질적 지배력 더 커"
이 부회장은 이어 "지분만으로 따지면 나는 삼성전자보다 삼성물산이 더 많다"며 "하지만 내가 대주주로 있자면 잘 모르는 삼성물산보다 지분은 거의 없지만 열정을 갖고 일해 온 삼성전자가 실질적으로 내 지배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영권의 의미를 리더의 역할과 결부시키며 "리더가 되려면 사업을 이해하고 비전을 제시해 좋은 인재들이 오게하고 신바람 나게 일하게 해 경쟁력을 강화시켜 경쟁에서 생존하도록 해야 한다"며 "그런 (리더로서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 경영권"이라고 정의했다.

삼성 오너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많은 삼성생명 관련 의사결정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것도 이러한 이 부회장의 철학과 같은 맥락이다.

삼성생명의 경우 3월 말 기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가장 많은 20.7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19.34%)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17.08%)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보고만 받았을뿐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은 그의 경영권에 대한 철학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이 부회장은 이 날 재판에서 “금융업에 대해 전자보다 아는 것도 없고 삼성생명 경영진과 (그룹) 미래전략실 전문가가 검토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금융지주 전환 의사를 물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보다 지분도 많고 삼성생명을 오래 경영한 이건희 회장이 건강했더라도 아마 (사업을 전문경영인에게) 다 맡겼을 것”이라며 “사업 결정은 회사 사장들과 미전실에서 검토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관례"라고 언급했다.

"삼성물산 합병 부정적 견해 관철시키지 않아...전문가 의견 따라"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반대하자 합병 추진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음에도 이를 관철시키지 않은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자신이 회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잘 아는 사장 등 최고경영진과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의 의견에 따른 것이라면서 당시 합병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특검의 논리에 일침을 가했다.

이 부회장은 “그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앞으로 어려워지는 사업환경을 어떻게 헤쳐가는 데 도움될지에 시간을 더 쓴다”며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신경 안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경영철학은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입원이 장기화되면서 주변에서 회장직 승계를 권했지만 그는 스스로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이 날 재판에서 회장직 승계와 관련해 "제가 아직 준비가 덜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승계를 고사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이 생존해 있어 자식된 도리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언급도 했지만 보다 더 큰 방점은 자신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는 "제가 한 단계 더 위치변화가 있으려면, 이왕이면 사내에서든 사회에서든 환영을 받으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삼성 안팎에서 공감대가 형성됐을때 회장직에 취임하는 것이 온당한 절차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이는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청와대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 지원 등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특검의 의혹 제기와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당장 경영권 승계에 뜻이 없었던 이 부회장이 이를 위해 부정한 청탁을 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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