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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 안종범 수첩 열어보니 '빈 상자'


입력 2017.07.06 06:00 수정 2017.07.07 08:47        이호연 기자

재판부, 직접증거 채택 안해...진술능력 불인정

삼성 관련 청탁이나 대통령 지시 등 청와대 개입 정황 없어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재판부, 직접증거 채택 안해...진술능력 불인정
삼성 관련 청탁이나 대통령 지시 등 청와대 개입 정황 없어


판도라의 상자인줄 알았는데 열어보니 그냥 빈 상자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뇌물공여 혐의 여부를 가리는 재판에서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으로 여겨졌던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수첩에서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서 결국 직접 증거로도 채택되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는 5일 자정을 넘겨 진행된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제 36차 공판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을 직접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날 재판 말미에 안 전 수석 수첩과 관련해 다른 재판부들도 결론을 냈다며 증거채택 여부를 이같이 결정했다.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의 수첩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과 독대 혹은 개별면담들 사이에서 말을 했다는 진술 능력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존재한다는 자체, 즉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간 대화가 있었다는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는 채택하겠다”고 덧붙였다.

재판부의 이러한 결정은 지난 4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제 35·36차 공판 진행 상황과 맞닿아 있다.

연이틀 증인으로 출석한 안 전 수석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지시를 받은 적도, 자신이 지시를 내린 적도 없다"며 "자신의 업무 수첩에도 그러한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이번 재판 최초로 연 이틀 연속 법정에 출석한 증인이 된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청와대와 삼성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 인물로 특검이 주목해 왔다. 특히 특검은 그의 업무 수첩이 이번 재판에서 기소 혐의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을 자신해 왔다.

하지만 특검의 이러한 기대감은 물거품이 됐다. 안 전 수석은 특검이 정황으로 추정하는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거듭 증언했고, 업무수첩에도 그러한 내용들은 기재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전 수석은 이틀동안 이어진 특검과 삼성측 변호인단의 신문에 일관되게 청와대 개입 사실을 부인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문제와 관련, 국민연금의 의결권 찬성 유도부터 합병 이후 신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주식처분 규모 결정, 금융위원회의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 검토 등 삼성과 관련한 어떠한 사안에도 청와대가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실제 재판에서 공개된 안 전 수석의 수첩에는 합병이나 의결권, 순환출자, 금융지주 등의 단어들이 기재돼 있지 않았다. 안 전 수석은 수첩이 대통령(VIP)의 말씀만 기재한 것이라면서 없는 내용은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자신도 그런 내용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이를 토대로 청와대에서 합병이나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지시나 회의가 있었으면 관련 단어가 안 전 수석의 수첩에 기재돼 있었을 것이라면서 청와대 개입이 없었다고 강변했다.

금융위의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 관련해서도 당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지 못해 관여하지 않고 금융위가 자율적으로 결정해 처리하도록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삼성 측 변호인단이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이 ‘안 전 수석이 금융지주사 전환건 너무 안챙겨 서운했다”고 증언했는데 그 정도였나“라고 묻자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답변했다.

이보다 앞서 변호인단이 “(금융지주사 전환 관련) 박 전 대통령이 증인에게 지시하거나 삼성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는가”라고 묻자 “제 기억에는 없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이를 토대로 안 전 수석을 삼성의 청와대 청탁의 연결고리로 보고 그의 수첩을 핵심 증거로 삼으려 한 특검의 논리를 반박했다.

안 전 수석이 삼성의 승마지원 내용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최순실씨 모녀의 존재에 대해서도 몰랐다고 하는데 특검의 주장대로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면 가능한 일이었겠느냐고 꼬집었다.

변호인단은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물산 합병 관련 지시는 고사하고 내용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못 들었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의결권 문제에 개입한 적이 없고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 검토 관련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 전 수석의 수첩과 관련, "본인도 적기만 했지 확인이 어렵다고 할 정도로 수첩 내용을 보면 알아볼 수 없는 내용이나 오류가 꽤 많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재판부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은 언급하지 않은 경우에도 메모 가지고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안 전 수석 수첩으로 독대때 사실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실제 수첩에 나온 삼성 관련 내용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청탁받았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데 수첩만으로 재판의 핵심 쟁점인 뇌물의 대가관계 확인이 결코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호연 기자 (mico91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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