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탄핵표결 현장에서 보니...'민심의 힘' 30분만에 299명 완료
<현장>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속 신속 탄핵
의원들 1인당 평균 불과 50여 초만에 표결 완료
<현장>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속 신속 탄핵
"총 투표수 299표중 가 234표 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 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탄핵소추안 가결 선포에 방청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세월호 유가족이 포함된 방청객중 일부는 '대한민국 만세', '훌륭한 국민들 만세'라고 소리쳤다.
9일 오후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234표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했다. 반대는 불과 56표에 그쳤고 기권 2표, 무효 7표가 나왔다. 정치권은 지난 6주간 수백만명이 거리로 나와 외친 민심의 무거운 명령을 받들었다. 표결에는 재적 국회의원 300명중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참여했다.
탄핵소추안 표결은 재적의원 300명중 299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표결 시작부터 종료까지 불과 30여 분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처리됐다. 본회의장내 기표소가 8개고 표결에 참여한 의원이 299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원들은 1인당 평균 불과 50여 초만에 표결을 완료했다. 이는 표결에 참여한 의원중 상당수가 표결전 이미 결심을 굳혔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날 본회의는 오후 3시1분 개회했다. 개회 10여분 전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무소속 의원들은 일찌감치 입장했다. 야당 의원들보다 5분 정도 늦게 회의장에 들어선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른바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 시간차를 두고 입장했다.
의석이 거의 다 채워졌을 무렵 정세균 의장이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 의장은 별다른 모두발언 없이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상정했고,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제안설명을 시작했다. 김 의원이 '세월호 7시간'이 포함된 탄핵소추안을 제안설명 하는 중간중간, 의원들은 자리 앞에 놓인 단말기 모니터에 뜬 제안설명을 터치해가며 꼼꼼히 읽는 모습을 보였다.
친박계로 알려진 의원들은 대체로 김 의원의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얼어붙은듯 요지부동의 자세를 유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법률위배 사항에 대한 설명이 이어질때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한숨을 쉬며 앉은채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김관영 의원이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정도에 이른 것이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몸을 기울여서 기도하는듯한 자세를 취하고 눈을 감기도 했다.
15분여의 제안설명이 종료되자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 의석 일부에서는 '잘했어'라는 응원이 나왔다.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질의나 의원의 자유발언 후 발언에 동의하는 의원들은 같은 당 의원을 중심으로 '잘했어', '수고했어' 등의 추임새를 넣곤 한다.
제안설명 후 이어진 표결에는 야당이 앞장 섰다. 의장석을 기준으로 좌우 4개씩 총 8개의 기표소중 좌측엔 민주당 의원들이 우측엔 국민의당 의원들이 투표를위해 줄을 섰다. 가장 먼저 투표한 의원은 각당의 원내대표들이다. 우상호·박지원 원내대표는 가장 먼저 기표소로 입장했고 몇 초 걸리지 않아 투표를 끝냈다. 뒤를 이어 좌측에서는 추미애 대표, 김종인 의원이 우측에서는 안철수·심상정 의원이 투표를 마쳤다.
새누리당 의원들중에는 김진태 의원이 제일 먼저 기표소로 향했다. 김 의원은 기표소에 들어가자마자 순식간에 나와 한표를 행사했다. '친박계'로 알려진 의원들은 선뜻 자리를 뜨지 못했다. 조원진·최경환·홍문종 의원 등은 투표 시작 6분여 만에 자리를 박차고 본회의장을 나갔다. 지도부인 이정현·정진석 의원은 자리에서 망부석이 된듯 우두커니 동료 의원들의 투표를 쳐다봤다.
비박계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투표 시작 10여분 만에 한 표를 행사했다. 투표 시작후 20여분이 지나자 친박계의 변화가 감지됐다. 큰형인 서청원 의원이 결심한듯 입을 굳게 다물고 투표줄로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서 의원의 거동을 본 '친박계' 이정현·조원진·이장우·홍문종 의원 등은 일제히 투표대열에 합류했다.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에 의해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혀진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투표 시작 27분만에 여당 의원중 감표위원을 제외하면 가장 늦게 투표했다. 하지만 유 의원의 투표는 신속했다. 유 의원은 기표소에 들어간지 12초만에 투표를 마치고 나왔다.
투표 시작 30분만에 투표는 종료되고 개표가 시작됐다. 개표는 총 16분이 걸렸다. 개표가 완료되기 전 먼저 명패수가 알려지자 본회의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명패는 투표시 용지와 함께 넣어 총 투표인원이 몇 명인지, 부정 투표는 없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야당 의원들은 정 의장이 명패수를 밝히자 역사의 현장을 남기려는듯 폰을 꺼내 사진 혹은 동영상을 찍었다. 일부 여당 의원들도 개표중인 감표위원과 본회의장을 찍는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굳은 표정으로 정면의 허공만을 응시했다.
개표과정에서 여야의 날카롭운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개표가 10분쯤 지난 오후 4시5분께 민주당 감표위원인 오영훈 의원이 추미애 대표 자리를 향해 오케이라는 손짓을 했다. 이를 목격한 일부 방청객은 작은 소리로 탄성을 뱉었다.
3분쯤 뒤엔 국민의당 감표위원인 채이배 의원이 박지원 원내대표를 향해 수신호로 숫자를 표시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를 보고 "우와!"라고 외치고 주먹을 움켜쥐는 제스쳐를 취했고 새누리당 의석에서는 "감표위원이 왜 보고를 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오후 4시9분 정세균 의장은 개표 결과를 발표하고 산회를 선포했다. 방청석에서는 환호가 터졌다. 세월호 유가족은 퇴장하면서 "감사합니다 국회의원 여러분", "새누리당도 해체하라. 공범이다", "김진태, 촛불은 활활 타오를 것이다" 등의 외침이 나왔다. 일부 세월호 유가족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정 의장의 산회 선포와 함께 국회 로텐더홀로 쏟아져 나온 의원들은 말을 아꼈다. 엄중한 민심이 반영된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일부 지도부에 속하거나 대선주자인 의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원들은 기자들의 질문에도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짧게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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