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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점거농성 80일' 느린 민주주의 언제까지…


입력 2016.10.16 06:13 수정 2016.10.16 06:14        이선민 기자

“학교에서 한방에 결단해야”vs“원만한 타협 이루어져야”

지난 8월 10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에서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학내에서 행진 및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학교에서 한방에 결단해야”vs“원만한 타협 이루어져야”

지난 7월 28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평생교육단과대학(미래라이프대학) 사업철회를 주장하며 본관 점거 농성을 시작한 후로 80일이 흘렀다. 미래라이프 대학 사업은 철회됐지만, 총장 퇴진을 원하는 학생들의 시위는 본관 점거나 행진 시위를 넘어 졸업식·채플 등 학내 행사의 게릴라 시위로 이어지기도 했다.

80일간 본관을 점거하고 총장 사퇴를 외치는 이화여대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주모자 없는 느린 민주주의다. 특히 경찰이 본관에 평의원들을 감금한 혐의로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등 3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 이후 학생들은 “주동자가 없으며 특정 정치세력과도 무관하다”는 것을 수차례 강조했다.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은 학교 본부와의 대화에도 ‘서면질의’를 고집하며 “이 시위는 자발적으로 모인 학생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의견을 수렴해나가며 진행하고 있기에 대표자를 뽑을 수 없어 면대면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때도 질문을 사전에 취합한 뒤 본관 내에서 전체 토론인 ‘만민공동회’를 거쳐 답변하고, 결정할 사안이 있을 때는 본관 내 시위 참여자 모두를 상대로 ‘만장일치제’를 통해 결정한다.

기존의 대학 시위가 총학생회나 학생 비상대책위원회 등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학교에 ‘사발통문’을 게시하고 “이번 시위는 기존의 상명하달식 의사 전달 체계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화인의 새로운 시위 체계”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이러한 연대 책임제를 새로운 대학 시위의 형태로 제시한 가운데, 이 시위를 지켜봐 온 이화여대 교수와 심리전문가에게 이 방식이 이화여대 농성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물었다.

이화여대 교수인 A 씨는 13일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느린 민주주의는 새로운 방식의 제시이기도 하지만 시위를 장기화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며 “학생들이 좋은 취지로 이러한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에는 공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이 지연되면서 전략적으로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게 됐다”며 “느린 민주주의라는 것은 모두가 뚜렷하게 공감하는 가치가 있을 때도 비효율적인 방법인데, 학생들이 주장하는 ‘이화의 가치’가 선연하지 못한 상황에서 느린 민주주의로 효율성을 확보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이 느린 민주주의를 유지하기는 힘들어질 것”이라며 “다만 모든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만큼 어떤 방식으로 변할지 예측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같은 날 본지와 인터뷰한 심리전문가 B 교수는 학생들의 느린 민주주의에 대해 “이 의결형태를 좋다거나 나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면서도 “화백회의 같은 이 만장일치 제도는 논리적으로 누군가와 모종의 합의를 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니다”라고 약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한 이런 형태는 표면적으로는 다 같이 의결과정에 참가하는 가장 좋은 형태이지만, 책임이 분산되어 누군가 실질적 책임을 질 수 없다”며 “학교와의 합의를 위해서는 의결 형태를 바꾸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지난 8월 10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에서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학내에서 행진 및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두 교수는 모두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현재의 시위 방법이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지적했지만, 이 시위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르게 제시했다.

이화여대 A 교수는 “이미 출구전략을 찾는 시기를 놓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외부의 지적이 난무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만 쌓이고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 지금, 출구전략을 찾는 시기를 놓쳤다”며 “총장이나 이사회가 한 방에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명예 총장 제도를 다 없앤다든지 큰 결단을 해서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부담을 더는 방법”이라며 “그렇게 해결하지 않으면 이대로 썩어가게 될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총장의 사퇴나 해임에 관해서는 “이미 리더십을 잃은 총장이 왜 그 자리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대로라면 교수들도 총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외부에서 사태를 지켜본 B 교수는 “노사 관계에서도 사측과 노동자 측의 ‘원만한 타협’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며 “학교와 학생이 원만한 타협을 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면 가장 좋다”고 말했다.

B 교수는 “학교도 일정 부분 양보하고, 학생들도 어느 정도 타협해 양측이 함께 선을 이루어 나가도록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지금 학생들이 의결방식을 바꾸는 것이 빨리 결론을 내는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에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 총장이 들어왔을 때 또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며 “학생들도 행정적인 절차를 다 아는 것이 아니고, 총장이나 교수들도 전달 상황에서 꼭 오해가 생긴다. 이때 또 이런 적극적인 방법이 동원되고 해결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선민 기자 (yeatsmi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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