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경영평가, 3등급 하향…이례적으로 서둘러 강등
업계, 조건부 승인에 '무게'…우리금융 건전성 지표 상승
"좌초되면 후폭풍 상당해…5월 내 인수 여부 확정"
"우리금융지주 및 우리은행 검사 결과 발표를 미룬 이유는 검사를 경미하게 취급하겠다는 게 아니라 원칙대로 '매운맛'으로 국민과 시장에 알리기 위함이다."(2024년 12월20일)
"회장이 재직 중에 발생한 대규모 부정행위에 대해선 당연히 회장과 업무 관여자에게 책임이 있다. 부실한 내부 통제나 불건전한 조직 문화에 대해 상을 줄 생각은 없다."(2025년 2월4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임기를 지키는 게, 지배구조(거버넌스)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좋다."(2025년 2월19일)
"우리금융에 대한 경영실태평가 등급(3등급)이 최종 확정된 만큼 자회사 편입 예외 승인 가능 여부 및 조건 등에 대해 법규에 따른 선택지를 다각도로 보고 있다."(2025년 3월19일)
그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나서 우리금융을 향해 쏟아낸 강경 발언들이다.
이제 우리금융의 보험사(동양생명·ABL생명) 인수와 관련한 공은 금융위원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금감원이 우리금융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이례적으로 서둘러 강등 발표한 것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여전히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금감원의 등급 도출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통상 평가 결과를 내기까지 1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금융은 2~3달 만에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등급 하향'이라는 결론을 이미 정한 채 진행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돌았다.
앞서 금감원은 우리금융의 경평 등급을 한 단계 하향 조정하고, 바로 그 다음 날인 지난 18일 해당 결과를 우리금융에 통보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후 출입기자 간담회를 통해 "금감원의 경영실태평가 결과, 우리금융그룹 전체의 내부통제와 리스크관리 측면에서 여러 미흡 사항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그는 "우선 리스크관리 부문에서는 보험사 인수에 대한 경영의사 결정 과정에서 사전 검토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자회사 리스크 한도 관리 미흡, 주요 자회사의 거액·반복 부당대출 등 금융사고에 대한 관리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지난 2월에도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에서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 대출 730억원을 포함해 총 2334억원의 부당 대출 정황이 포착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보험사 인수 결정 과정에서 인수·합병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리스크관리위원회'를 개최하지도 않고 해당 안건을 이사회에 부의했다고도 꼬집었다.
등급 하향 조정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우리금융이 3등급을 받은 건 2004년 이후 21년 만이다. 2004년 우리금융 사례를 제외하면 금융지주사가 3등급 이하 등급을 받는 전례는 찾기 어렵다.
경영실태평가 등급은 ▲1등급(우수) ▲2등급(양호) ▲3등급(보통) ▲4등급(취약) ▲5등급(위험) 까지 5단계로 구분된다.
결국 금융권에서는 원칙적으로는 2등급 이상을 받아야 보험사 인수가 가능하지만, 금융위의 판단에 따라 '조건부 승인'에 무게감이 실리는 분위기다.
이에 일각에서는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가 '조건부 승인'이 될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는 데다, 시장 논리상으로도 우리금융이 최적의 인수자로 지목되는 가운데 금감원이 이례적인 속도로 경평 등급을 낮추는 것은 '과도한 흠집내기'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3등급 성적표를 받은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 가능성은 최종면접관인 금융위에게 달려있다"며 "금감원의 지적은 당연하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치고, 보완하면서 나가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보험 인수와 경영실태평가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한다. 자회사 인수에서 내부통제도 중요하겠지만, 그 보다 리스크관리, 자본 건전성 등의 문제를 더욱 집중해 봐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의 위기대응 능력을 보여주는 건전성 지표인 그룹 보통주자본(CET1)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2.13%를 기록해 금융당국 권고치인 12%를 넘겼다. 앞으로도 보통주자본 비율을 12.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또 우리금융은 지난 2014년 우리아비바생명을 매각했으나, 이미 보험업에 대한 경험을 갖추고 있어 운영하는 데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게 업계의 진단이다.
더욱이 이번 인수가 끝내 좌초될 경우 후폭풍은 매우 상당할 것이란 전망이다. 동양생명·ABL 생명이 새로운 인수 주체를 찾지 못하고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실제로 보험업계에서는 M&A 매물이 쌓여가고 있다. 롯데손해보험과 KDB생명의 매각도 몇 년째 지지부진한 데다, 최근 메리츠화재의 MG손보 인수가 노조의 반대로 불발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인수를 앞두고있는 보험사들은 아무래도 경영에 조심스러울 수 있다"며 "인수 시간이 오래 소요되면 경영 공백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시장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고 고객들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염려했다.
그는 "동양생명 고객이 250만명, ABL생명 고객이 109만명, 여기에 우리금융 고객이 2000만명정도 된다"며 "우리금융의 경우 현재 보험업이 비어있는 상태로 보험사를 인수하면 여러 가지 지원 여력이 있기 때문에 시너지가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우리금융이 보험사를 인수하게 되면 본격적인 4대 금융지주 경쟁체계가 마련 될 것"이라며 "경쟁구도로 가면 소비자는 물론 금융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등 선순환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한편, 금융위는 금감원이 전달한 우리금융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반영해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 승인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의 자회사 편입 여부가 5월 내에는 결정될 것으로 보고, 인수가 무산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당국으로서는 보험사 인수 실패로 발생할 수 있는 후폭풍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한편, 금융권에서도 인수합병(M&A) 시장이 매우 악화된 상황에서 인수가 불발되면 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 금감원장의 과도한 우리금융 개입은 금융당국과 업계 모두의 에너지만 쓸데없이 소모한 '우리금융 흠집내기'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