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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상]건설 일용직 노동자 돼 보니...“바닥 잘 보고 다니세요”


입력 2016.08.29 06:00 수정 2017.03.25 16:59        박민 기자

<새벽 인력시장 및 건설현장 이야기(상)>“현장 사람들은 친절했고 서로의 안전을 보살폈다”

건설·부동산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로서 직접 건설현장에 나가 일용직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는 어떻게 구하는지, 하루 일당은 얼마인지, 작업현장 근무여건과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를 들여다봤습니다. 또한 일명 '노가다'라 불리는 건설 일용직 근로자들에 대한 막연한 편견, 막노동꾼일 것이라는 선입견에 대해서도 고찰해봤습니다. 새벽녘부터 시작해 오후 5시쯤 일과를 마치고 일당을 받고 집으로 향하는 순간까지의 하루를 담아봤습니다.< 편집자 주 >



지난 18일 취재를 위해 찾은 건설 일용직 근로현장. 이날 서울 송파구 오금동 옛 동아일보 사옥 지하 1층~6층 철거현장에 투입됐다. 건물은 이미 폐쇄된 상태로 천장 형광등이 켜지지 않아 외부에서 끌어온 조명으로 지하 내부를 비추고 있다. 사진은 지하 1층에서 아래를 바다본 모습.ⓒ데일리안 박민 기자

새벽 인력시장 및 건설현장 이야기(상)
“현장 사람들은 친절했고 서로의 안전을 보살폈다”

“따따따다 따따다다다다” “드위윙이이잉”

크고 딱딱한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단단한 돌 덩어리에 구멍을 뚫는 해머(함마)드릴의 굉음이 적막한 지하공간을 가득 채웠다. 바닥에 구멍을 뚫어 난간대를 세우는 작업은 폭이 2미터도 채 되지 않은 협소한 통로에서 이뤄졌다. 어른 두 명이 편히 지나가기에 버거울 정도로 작업공간은 비좁았다. 통로 아래는 지하 6층까지 뻥 뚫려 있다. 언뜻 봐도 깊이가 30~40미터는 되어 보인다. 발을 잘못 헛디뎌 아래로 떨어지기만 해도 그 즉시 생명을 잃을 정도로 위험해 보였다.

현재는 폐쇄된 서울 송파구 오금동 옛 동아일보 사옥. 이 건물은 과거 신문을 찍어내는 인쇄작업을 했던 곳으로 지상은 2층에 불과하지만 지하에는 커다란 윤전기가 자리하고 있어 꽤 크고 넓었다. 높이만 지하 6층에 달한다. 두산건설은 이곳에 아파트를 지을 예정인데, 지상 건축물은 허물어 아파트를 세우고, 지하공간은 리모델링해 주차장 및 커뮤니티 시설로 쓸 예정이라고 현장 관계자가 설명했다. 건설업 일용직 근로자로 나선 지난 18일, 이곳 지하공간 철거현장에 투입됐다.

이날 아침 현장에 투입되기 전 안전교육을 받은 후 현장소장은 바닥을 잘 보고 걸으라고 신신당부했다. 개구부(벽이나 지붕, 바닥 등에 뚫린 구멍)가 있어 조심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또 현장에서 함부로 안전모를 벗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현장소장의 말은 지하 작업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딱히 되뇌이지 않아도 온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작업은 반장과 2인1조로 이뤄졌다. 지하공간 철거는 시멘트 골조만 빼고 모든 마감재를 제거하는 작업으로 이뤄진다. 이미 기능이 멈춘 배관, 선로, 환풍기 등의 모든 마감재를 뜯어내야 하는데 앞서 후속 작업자의 안전을 위해 통로에 ‘안전난간’을 설치해야 했다. 마감재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거나 뜯어낸 마감재를 들고 이동하다 자칫 잘못하면 통로 아래로 추락할 수 있어서다.

“나사.” 나사를 달라는 반장의 말에 마대자루 안에서 스트롱앙카를 꺼내 너트와 와셔(너트 밑에 끼우는 둥글고 얇은 쇠붙이)를 분리한 채 건넸다. 스토롱앙카는 길죽한 나사처럼 생긴 공구인데 끝에는 와셔와 너트가 달려 있다. 이 공구를 앞서 뚫은 바닥 구멍에 넣고 망치로 박은 다음, 그 위에 난간봉 바닥면을 맞춰 세우면 된다. 튀어나온 앙카 윗 부분에는 와샤와 너트를 넣고 조이면 난간지지대 설치가 완성이다.

“드위윙이이잉” 전기드릴이 난간봉 바닥 모서리 네 개에 끼워넣은 너트를 순식간에 단단히 조인다. 난간지지대를 힘 줘 흔들어 본다. 꽤 탄탄하다. 반장은 난간지지대 하나를 다 세우자 다시 내게 줄자를 잡으라고 지시한다. “자 잡아봐요. 바닥 조심하고” 줄자로 측정해 정확히 6미터 간격으로 다음 난간 지지대를 세우는 작업을 이어갔다.

‘안전난간 설치’작업은 생각보지 쉽지 않았다. 우선 이미 폐쇄된 건물 지하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암흑이었다. 작업자의 안전을 위해 외부에서 끌어온 영화 촬영장소에서 봄 직한 커다란 조명이 작업 공간을 밝히고 있었지만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아 녹록지 않았다. 또한 작업공간은 비좁았고, 환풍기도 작동하지 않아 공기가 쾌쾌하고 탁하다. 눈 앞에는 안전모 위에 착용한 라이트가 공기중에 떠다니는 희뿌연 잔재를 부유물처럼 비출 뿐이었다. 먼지인지 돌가루인지 구별이 채 되지 않은 쾌쾌한 어둠에서 ‘안전난간 설치’ 작업을 반복했다.

반장이 이동하면 뒤이어 해머드릴과 전기드릴, 나사가 잔뜩 담긴 마대자루를 끌고 따라가 공구를 차례로 건넨다. 이러한 단순 반복 작업은 오전 8시 30분부터 점심시간인 11시 30분까지 3시간 동안 쉼없이 계속했다. 쉬는 시간은 눈치껏 챙겨야 했다. 중간중간 반장이 해머드릴 작업을 하거나 전기드릴로 너트를 조이는 순간은 잠깐의 휴식시간이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잠시 기지개를 펴며 몸을 추수렸다.

지하 통로에 붉은색의 안전 난간지지대를 설치한 모습. 사진 중앙의 어두운 부분은 지하6층 바닥이다. 점심 이후 오후 작업에 투입되기 전 좌측에서 바라본 모습과 우측에서 바라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데일리안 박민 기자

“침묵이 감도는 현장…박민씨, 안전모 벗지말고 걸을때도 조심하세요”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기능이 멈춰버린 건물은 습도 때문에 바닥에 물기를 머금고 있어 미끌거렸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통로 아래는 지하 6층까지 떨어지는 바닥이다. 5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반장님은 말 수가 적었다. 지하작업장으로 내려오기전 어떻게 일을 하면 된다고 설명을 하고선 그 뒤로 특별히 건네는 말이 없었다. 다만 작업 중간중간 나사를 달라는 말과 “잡아봐요. 조심해요”는 말만 건넸다. 특히 자주했던 말은 “조심해요”다.

애초 건설현장 르포를 기획했을 때 현장에서의 안전수칙은 잘 지켜지는지, 휴식시간은 충분한지, 작업 강도 및 환경은 어떠한지 등을 직접 관찰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담으려 했다. 그러나 작업현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런 생각은 저만치 사라졌다. 실제 이날 현장에서 허리를 숙이다 폈을 때 천장에 튀어나온 철근이 안전모를 스쳐갔다. 희미한 불빛에서 걷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현장에서 잡담은 오히려 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우선은 ‘안전’이었다.

오전 11시 30분이 되자 반장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며 장비를 정리하자고 했다. 답답한 지하를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왔다. 퇴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위지만 지상으로 나오니 숨을 쉬는 게 한결 나았다. 지하는 어둡고 습해 곤혹스러운 작업현장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밖으로 나오니 땡볕을 피할 수 있어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설핏 스쳤다.

현장 인근에 위치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현장소장과 현장직원, 반장, 나 이렇게 네 명이서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육체노동을 해서인지 무더위 때문인지 밥알이 목메고 입안에서 겉돌았다. 먼지를 많이 마셔서인지 목도 칼칼하다. 다들 흰 밥에 물을 말아 먹는다. 여름철에는 맨밥을 먹으면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아 이렇게 물을 말아서 먹는다고들 한다. 나 역시 그들처럼 밥에 물을 말아 먹었다.

오후 1시까지는 휴식시간이다. 함께 그늘에 앉아 쉬면서 잠시나마 대화를 나눴다. 현장소장은 내게 일은 할 만 하냐고 운을 떼며 “박민 아저씨는 사회에서 무슨 일 하다가 건설현장에 왔어요?”라며 물었다. 현장에서는 모든 칭호를 이름 뒤에 아저씨를 붙여 불렀다. ‘박민 아저씨’ ‘박씨 아저씨’ ‘민이 아저씨’ 이런 식이다.

난 이날 딱히 특별한 기능없이 잡부로서 현장에 투입됐기에 묻는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냥...이것저것 하다가 왔어요...” 말끝을 흐렸다. “이런 현장에는 처음 나온 것 같은데 이전에 공부만 하다가 온거에요?” 재차 묻는 질문에 그냥 그렇다고 고개만 끄덕였다. 애초 취재를 위해 현장에 나왔다는 것을 밝히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들을 귀찮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왠지 모를 미안함이 컸다.

처음 와본 건설현장은 자칫 위험할 수 있고, 땀과 먼지가 가득한 곳이지만 이들에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삶의 터전일 것이다. 그 평범한 일상에 난 마치 ‘해병대 캠프’ 체험자마냥 불쑥 나타났고, 그들의 삶을 가벼이 ‘일일 체험한다’는 인상을 남길 것 같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냥 에둘러 표현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조용히 따라가주는 게 존중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내일도 오실꺼면 미리 연락해놓을께요”

현장소장이 말을 이어갔다. “공부만 하셨구나...그래요 그냥 집에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서 얼마라도 버는게 나을 꺼예요. 그게 부모님 돕는 일일 것일테고...” “내일도 나올실꺼죠? 계속 나올꺼면 아침에 인력사무소 들렸다가 나오는게 번거로울테니 바로 현장으로 나올 수 있게 사무실에 미리 연락해둘께요 그게 편할꺼예요.”

보통 일용직 근로자들은 새벽 일찍 인력사무소에서 소개 받아 현장으로 투입된다. 아침마다 사무소를 들렸다가 현장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 수고로움을 덜 게 해주겠다며 배려해줬다. 처음 현장에 나온 초보자를 위해 이렇게 생각해주는게 고마웠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막연히 억척스럽고 드셀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본 이들의 모습은 다정했다. 친절했으며 정이 있었고, 서로의 안전을 챙겼다.

앞서 이날 아침,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현장소장은 안전화가 없는 나를 위해 자신의 안전화를 줬다. 안전화는 앞 코가 단단해 물건이 발에 떨어져도 다치지 않고 바닥도 단단해 못이나 쇠조각 등을 밟아도 다치지 않는다. 장기간 한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 현장 측에서 인부에게 안전화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나처럼 일용직 근로자로 나온 경우 안전화를 챙겨오지 않으면 집으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박민씨 현장 처음이라고 했죠. 오늘은 제꺼 안전화 신으시고 당분간 계속 나올꺼라면 아예 드릴께요.”

현장소장의 이러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애초 하루만 계획된 일정인지라 ‘내일은 다른 일정이 있다며 나올수 없을 것 같다’고 에둘러 답했다. 고마운 마음과 한편으론 미안함 마음이 따랐다. 다른건 궁금한건 없냐는 물음에 현장소장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새벽에 인력시장 나가보니 사람들 많던데 요즘 건설 경기 어때요? 일거리는 많이 있는 편이에요?”

그가 말했다. “일거리야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어서 큰일이죠. 젊은 사람들은 오려고 하지 않고 그마나 있는 분은 나이드신 분들이니...” “젊은 사람들이 너무 편한 일자리만 찾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누구인들 이런 무더위에서 시원한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 쐬면서 일하고 싶지 않겠어요? 그래도 그런 사정이 안되면 이런 곳에 나와서라도 일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런게 없는거 같아 안타깝죠...”

철봉 비계. 지름이 약 6cm미터 정도 된다. 오금동 옛 동아일보 사옥 철거현장이 아닌 타 건축현장에서 찍은 사진이다.ⓒ데일리안 박민 기자

“벌써 1시네요. 자 이제 오후 작업 시작합시다.” 현장소장의 지시에 다같이 모여 스트레칭을하며 몸을 풀고 다시 오후 작업에 투입됐다. 오전에 본 처음 마주친 작업 현장은 점심 이후에는 조금은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걸을 때 어느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지 최대 동선은 어떻게 하는지 어느새 어두운 현장에 익숙해졌고 반장과의 작업 손발도 맞아갔다.

오후에는 오전에 설치한 난간지지대에 철봉을 잇는 작업을 했다. 현장에서는 철봉을 ‘비계’라고 불렀다. 길이가 6미터에 달하는 비계를 비좁은 공간에서 나르는 일은 꽤 힘든 일이었다. 무게도 족히 15kg은 넘는 듯했다. 입구까지 비계를 들고 나와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기 위해 이리저리 몇번이나 방향을 틀면서 움직였다. 어렵게 6미터 간격으로 세운 두 난간지지대 사이에 비계를 끼워 넣는다. 난간지지대에 연결된 핀으로 고정하니 드디어 완성이다. 완성된 안전난간을 보니 추락에 대한 두려움이 한결 사라졌다.

오후 작업은 오전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지하 1층의 안전난간 설치가 거의 끝나갈 무렵 시간은 4시 40분을 가리켰다. 낯설고 침묵으로 일관된 곳에서의 시간은 더디게 가지만 익숙해진 곳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빠르다. 반장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건설현장은 오후 5시 전에 종료한다고 한다. 장비를 한데 모아 정리한 뒤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함께 작업했던 반장은 컨테이너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작업복을 벗고 아침에 입고 온 듯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신발도 슬리퍼로 갈아신는다. 난 따로 옷을 준비해 오지 않아 작업복장으로 나왔던 난 그 옷 그대로 퇴근해야 했다. 문득 이날 새벽 인력시장에서 본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의 무리’ 들의 복장이 왜 그러한지 이해가 됐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넘긴 시간과 노동 = 9만8000원

이날 현장을 벗어나기 전 인력사무소에서 받은 확인증에 현장소장의 사인을 받아야 했다. 이 확인증을 들고 다시 새벽녘에 찾았던 남구로역 인력사무소로 가야 그곳에서 일당을 받을 수 있다. 일당을 받아야 모든 하루 일과가 끝난다. 현장소장이 사인을 한 확인증을 내밀며 내일은 안 나올꺼냐고 다시 한번 물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늘 하루 감사하다고 하고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뵙고 싶다며 인사를 하고 현장을 나왔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 하루 일과는 오후 5시가 넘자 끝을 보이는 듯 했다. 송파구 오금동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7호선 남구로역으로 이동했다. 남구로역에는 이날 새벽에 봤던 무리들이 또 모여 있었다. 다들 일당을 받기 위해 나처럼 다시 인력사무소를 찾은 듯했다. OO인력사무소에 가서 신분증을 내밀고 일당을 현금으로 받았다. 확인증에 써 있던 일당은 11만원. 여기에서 소개비 10%를 떼고 준다고 명시돼 있었다. 일당은 9만9000원.

사무소 직원이 건넨 돈을 받아 세어보니 9만8000원이다. 1000원이 부족하다고 하니 갑근세(갑종근로소득세)라는 명목의 세금으로 1000원을 떼고 주는 것이라고 한다. 왜 사무소에서 세금을 떼냐고 반문했더니 갑근세는 애초 현장측에서 제외하고 주는 것이라고 직원이 설명했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시간과 노동의 대가 9만8000원. 단순 노동의 값어치로만 따지면 큰 돈으로 보일 수 있고, 근로 시간과 위험 감수, 특히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했다는 것에 대한 보상치고는 적다고도 느껴졌다. 모든 노동에는 값어치가 매겨진다.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의 값은 9만8000원이었다.

매해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려고 할 때마다 건설산업 등에 수조원의 예산을 푼다. 경제 선순환 구조에서 건설업이 시중에 돈을 푸는데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고 수치상 믿고 있어서다. 그러나 난 이날 일당을 가벼이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그동안 월급통장에 숫자로만 찍히던 돈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써 왔지만 때가잔뜩 묻은 손으로 받은 이 돈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박민 기자 (myparkmi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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