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신조어 붐...'엄친딸' 북한말로 바꾸면?
북 '엄친딸'은 군복무·당원·대학·성품·재력 갖춘 여성
최근 장마당 영향으로 '원'만 있어도 된다는 분위기 확산
북 '엄친딸'은 군복무·당원·대학·성품·재력 갖춘 여성
최근 장마당 영향으로 '원'만 있어도 된다는 분위기 확산
한국에 ‘엄친딸’이 있다면 북한에는 ‘군당지도원’이 있다. 이름만 보면 마치 군과 당을 통솔하는 국가 간부 직책의 권위적인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북한에서는 ‘잘난 여성’을 뜻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것을 표현하거나 여러 가지 의미를 보다 간결하게 표현하기 위해 특정 세대나 부류로부터 새롭게 파생된 신조어가 북한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엄친딸’(완벽한 조건의 ‘엄마 친구 딸’ 줄임말)이 미모와 지성 등 ‘잘난’ 면모를 갖춘 여성을 뜻하는 신조어이듯 북한의 ‘군당지도원’도 ‘잘난 여성’이 갖춘 조건들을 집약한 신조어다.
‘군당지도원’은 최근 북한 사회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조건들을 뜻하는 말로 △군복무 여부 △당원인지 여부 △지식(대학 졸업 여부) △도덕적 성품 △재력(원) 등을 줄여 합성한 단어다. 북한 사회에서 이 같은 조건을 갖춘 여성들은 같은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 남성들에게는 최고의 신붓감으로 인식된다.
이밖에도 북한에서 이상적인 배우자를 지칭하는 신조어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이는 사회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매 시기 일등 배우자감에 대한 기준이 변화하고, 서로에 대한 선호 조건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북한 여성들이 원하는 배우자의 조건은 ‘열대메기’로,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고 △‘대’학을 졸업했으며 △당증을 ‘메’고 있고 △이불장·책장 등 '기'물들을 마련해줄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북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원하는 조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전문매체인 뉴포커스가 지난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남성들은 ‘군당지도원’ 외에도 ‘현대가재미’를 최고의 배우자로 꼽았으나, 최근에는 ‘손오공’이 떠오르는 추세다.
‘현대가재미’는 △‘현’화(달러)가 많고 △‘대’학을 졸업하고 △‘가’풍이 좋고 △‘재’간이 많으며 △아름다운 여성(미)을 말하고, ‘손오공’은 △‘손’전화기(휴대전화)와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군 제대 후 대학 ‘공’부를 지원해줄 수 있는 여성을 가리킨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한 탈북자에 따르면 북한에서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 매 시기 북한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가치를 조건으로 내거는 풍조가 형성돼있다.
‘군당지도원’의 경우 북한 내에서 이미 ‘잘난 여성’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면, 최근에는 자본주의 시장 형태인 ‘장마당’으로 사유화가 확산되면서 ‘군·당·지·도’가 없더라도 ‘원’(재력)만 있으면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전언이다. 이는 여성이 남성을 선택하는 기준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현재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원이라는 타이틀은 생계를 유지하고 돈을 버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당에 입당하려는 사람들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지난 2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도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로 변해가며 노동당원증보다 실질적 생활에 필요한 돈을 더 중시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소식통은 “돈이 안 되는 노동당원증은 점차 대중적인 관심에서 밀려나고 있다”면서 “돈만 많으면 굳이 당원이 아니어도 된다는 게 요즘 젊은 여성들의 인식”이라고 전했다.
북한 사회에서 ‘돈’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자 이와 관련한 신조어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특히 돈으로 입당한 자들을 지칭한 신조어도 등장했다. 애국미(쌀)를 많이 내 입당한 이는 ‘강냉이 당원’, 군수물자 지원금을 내고 입당한 이는 ‘돈 당원’, 군대에 식량을 공급해 입당한 이는 ‘돼지 당원’ 등으로 불린다.
이 같은 현상은 북한 사회에 시장경제 요소가 스며들고 있다는 증거라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10일 본보에 “장마당 등을 통해 북한 내 알게 모르게 시장경제가 스며든 결과”라면서 “북한의 ‘돈주’들이 북한 권력층과 유착관계를 통해 급성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부패형태가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북한 젊은 층 사이 ‘돈’이 주요 가치로 부상한 것과 관련 “북한 내부 시장경제 논리가 확산되며 북한 정부에서 강조하는 사상교육 등이 과거만큼 먹히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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