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기업 보증에 '1조원' 손실...자본확충펀드 통해 '10조원' 추가보증
정부 과도 개입·기관 힘겨루기 속 손실 확대 "리스크 상승에 기관 안위 우려"
"우리 신용보증기금의 기본 설립 취지는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보증 지원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 지시에 중소기업 살릴 자금을 빼서 살지 무너질지 모를 대기업 몇 곳에 쏟아 부어야 하는 처지죠. 아직 그 기업들에게 못 받은 돈만 해도 1조원이 넘어가는데 우리 기관까지 무너질까 두렵습니다." (신용보증기금 A 관계자)
최근 정부의 국책은행 자본확충안을 바라보는 신보 내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3년 전 신용경색 기업에 대한 회사채 신속인수제(P-CBO)지원에 나섰다 아직 1조원이 넘는 보증금을 상환받지 못한 가운데 또다시 동일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이 결정되면서 일각에서는 공사 존립에 대한 위기감마저 형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구조조정 기업 보증에 '1조원' 손실...자본확충펀드 '10조원' 추가보증
총 11조원 규모의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에서 신보는 한국은행이 대출금 형태로 마련한 10조원에 대한 지급 보증을 담당하게 됐다. 이 자금은 여러 국책은행을 거쳐 장기적 부실이 드러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정상화 기금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행여 있을지 모를 금융기관 손실에 대해 신보의 보증이 일종의 담보 역할을 하면서 한은의 안전성은 일단 보장받게 된 반면, 보증기관인 신보의 리스크 부담은 그만큼 커졌다.
이 구조조정 기업들에 대한 신보의 자금 보증 지원이 이미 수 년 전부터 진행 중이었다는 점에서 우려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난 2013년 당시 정부는 업황 부진으로 신용경색 위기를 겪던 5개 대기업에 대해 '시장안정 회사채 담보부증권(P-CBO)' 발행을 통한 기업의 유동성 확보를 추진했고, 신보는 정부 방침에 따라 지난 3월 말까지 총 1조3380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 5개 기업 중 절반이 넘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동부제철 등 3곳이 잇따라 자율협약과 워크아웃을 발표하면서 이들이 갚지 못한 1조834억원은 결국 고스란히 신보의 채무부담으로 남게 됐다. 1조800억원 상당의 빚은 당장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만기가 도래하기 때문에, 부실기업을 대신해 신보는 현재 자구책 마련을 위한 유동성 확보 또한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게다가 이번 문제가 단순히 해당 기업과 신보 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신보의 자금력 악화로 본래 역할인 일반 중소기업 지원이 사실상 중단됐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신보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 한 곳 당 2억5000만원 상당의 자금 보증을 지원하고 있는데, 대기업 3곳이 야기한 손실금만 지원해도 현행 보증운용배수인 9배를 적용하면 10조원 상당"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처럼 4만 개의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자금을 오롯이 3개 대기업에 투입했으니 그만큼 중소기업에 지원할 자금 자체가 줄어든다"며 "또 중소기업을 배제하고 그 많은 비용을 투입한다고 해도 이미 부실이 만연화된 대기업들이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 역시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부 개입+기관 힘겨루기에 추가손실 확대 "기관 안위 우려"
이러한 가운데 정부 등 유관기관의 과도한 개입과 기관 간 힘겨루기의 틈바구니 속에서 신보의 추가손실만 야기되는 등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3년 정부 주도로 추진됐던 '시장안정 P-CBO'는 당초 1년 운용을 목표로 진행됐으나, 1년 뒤에도 기업들의 상황이 좋지 않자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2015년까지 회사채 차환(P-CBO) 지원 기한 연장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이에대해 한은은 당초 기한인 2014년 6월 이후 추가 손실분에 대한 출연을 중단했고, 유동화 보증 지원 연장을 결정한 정부(기재부) 역시 자금 부족을 이유로 1500억원 상당의 보증 재원 배정에 난색을 표하면서 이에 대한 손실 역시 사실상 보증기관인 신보의 몫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신보 내부에서는 매번 되풀이되는 이같은 상황을 위기로 규정짓고 있다. 이번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에 대한 참여 역시 충분한 내부적 논의 대신 사실상 윗선의 결정를 통해 이루어지면서 그에 따른 자금 보증 지원에 대한 리스크 검토 등도 뒷전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일부 직원들은 향후 리스크 관리 부실 책임을 지고 신보가 기관 간 통폐합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신보 관계자는 "우리가 하는 일이 기업들의 부실을 예측하고 리스크를 판단해 보증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그 어느 기관보다 전문가"라며 "그런데 지금까지 발생한 자금 보증에 따른 손실과 기업 지원에 있어서만큼은 기본원칙과 실무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논리와 로비, 기관 간 힘겨루기에서 비롯된 것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