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대장'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김헌식의 문화 꼬기>오히려 복면을 쓴 이들의 복면을 벗겨야
신화 만들기는 현실을 압도하다못해 인간을 죽이고 만다. 음악의 신화를 만드는 것도 결국 인간의 음악을 압도하고 마침내 죽이는 형국이 된다. 복면가왕이 되다못해 신을 탄생시키려했다. 그 상징적 아이콘이 바로 음악 대장이었다. 신의 음악은 하나로 귀결될지 모르지만 인간의 음악은 다양하다.
인간이기 때문에 정답으로 볼 수 있는 음악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복면가왕'의 음악대장은 말 그대로 대장 노릇을 하려 했지만, 음악적 다양성을 심대하게 해쳤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음악 대장과 같이 신을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이 프로그램이 갖는 긍정적인 취지조차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의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처음부터 편견을 갖고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적 습성을 해소하는 취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뜻밖의 재능을 갖고 있는 이들의 공연에 놀라움도 새삼 느끼게 했다. 발견하는 재미는 성찰할 수 있는 가치를 줬기 때문에 호평을 이끌어내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대중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가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음악대장은 1위의 장기 독점을 통해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위배되었다. 재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번번이 깨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재능은 음악 대장 앞에 별거 아닌 게 되었다. 갈수록 그에 상응하는 음악적 재능을 가진 이들을 찾기 힘들어져 갔다. 더구나 음악 대장은 국가스텐의 하현우였다.
그는 가수였다. 그가 가수가 아니라 만약 배우였다면 다르겠지만, 가수가 얼굴을 가리고 다른 이들을 물리치는 것은 그렇게 좋은 현상만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이미 음악 실력을 매우 인정받은 뮤지션인데 애써 복면가왕에 나올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더구나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었고, 재능있는 이들이 무릎을 꿇거나 아예 그 자리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음악에 기본적으로 경연이 위력을 떨치는 것도 그렇지만 무적의 신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음악적 향유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음악을 즐기는 것이 우선인데 그것을 등수로 매기거나 승패로 우열을 가르는 것은 음악적 장르나 취향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다수 선호의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반드시 할 수가 없으며, 그것이 연승을 통해 매주 전파를 독점할 이유가 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복면가왕은 다양한 이들의 의외의 음악적 역량을 시청자와 공유 내지는 향유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출연하는 이들이 모두 연예인들이기 때문에 한계를 갖기도 한다. 그러한 연예인들에 관한 퍼즐 맞추기는 점점 식상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텔레비전에서 왜 복면을 끝까지 쓰고 있어야 하는 지 의문점이 들기만 한다. 오히려 그러한 복면이 왜곡된 판단과 인상을 갖게 만들고 있다. 복면이 갖고 있는 캐릭터는 자승자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텔레비전에서 복면을 쓰고 있는 것은 텔레비전의 시각적 장점을 오히려 부정하는 셈이다. 이는 음악에서 텔레비전의 열등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러나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각각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라디오나 음원은 가창력을 잘 전달할 지 모르지만 시각적 효과는 약하다. 텔레비전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가창력만이 최고라는 의식아래 시청자들은 캐릭터 복면만 보고 있어야 한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표정이나 정서를 읽지 못하고 인형 같은 존재에서 나온 노래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의 자세는 언제나 스탠딩으로 획일적인 자세를 유지할 뿐이다. 물론 당연히 그에 상응하여 어울림만큼의 노래들만이 선곡된다. 이는 대단히 제안된 범주안에 있을 뿐이다.
음악에 대장이 있어야 하는 지 모르겠다. 가창력만이 음악의 최고라는 인식도 편견일 뿐이다. 내지르거나 감정을 후벼파는 음악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음악은 다수결에 따라 최고와 최하위가 정해질 수는 없다. 정답이 아니라 각각의 팬들의 선호가 중요할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예인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주는 것이 더 우선이어야 한다. 복면을 쓰고 있던 이들이 제 가치를 찾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연예인 그들만의 리그에서 언제든지 벗어나야 할 시대적 요청이 있을 뿐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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