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헌식의 문화 꼬기>고구려 멸망후 4만명 양자강 이남으로 이주시켜
지난 5월 7일 방송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묘족 결혼식 풍경이 펼쳐졌다. 중국하면 대개 일반적인 모습만 그려졌는데 이날은 소수민족 묘족을 그려서 색다른 면을 담아냈다. 그러면서 한국과는 다른 점이 부각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묘족은 그런 다른 민족이 아니다. 우리 민족과의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 점을 반추하여 볼 때 대중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된다.
단적으로 말해 묘족은 고구려의 왕족 그리고 귀족들이다. 이는 최근에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는 역사적 진실이다. 일단 그들의 결혼 풍습만 보아도 고구려와 비슷한 것이 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아내 즉 형수와 같이 살게 되어 있다. 이것이 형사취수(兄死娶嫂) 또는 취수혼(娶嫂婚)이다. 왜 그들은 머나먼 땅에 있게 된 것일까.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고구려 유민 4만여호를 양자강 이남으로 이주시킨다. 이들은 나중에 서부-동부-남부의 묘족이 된다.
이들은 매우 독특한 민족이다. 중화 역사상 가장 저항적이고 독립적이었다. 하지만 한족들을 그들을 동화시키기 위해 갖은 탄압책을 구사했다. 하지만 그들은 굴복하지 않았고, 탄압을 피해 고산지대로 이동에 이동을 거듭했다. 나중에는 베트남으로도 이동했고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을 통해 세계에 널리 퍼지기도 했는데 우수한 지적 능력이나 독립성 때문에 아시아의 유태인이라고 불린다.
그들이 고구려 유민이라는 것은 몇 가지 증거가 말해준다. 우선 그들은 궁고라는 바지를 입는다. 궁고는 고구려 벽화에도 나오는 남성의 의상으로 주로 말을 탈 때 입는다. 엉덩이 부분이 올라와 있기 때문에 말을 탈 때 들썩이거나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그들의 의상 가운데에는 조우관이 있는데 이는 까마귀 깃털로 만드는 모자이다.
고구려는 유목민족처럼 새를 섬겼으며 특히 삼족오 상징이 말해주듯이 까마귀를 신성시 했다. 이러한 조우관 역시 고구려 벽화의 수렵도에 나오는 의상이다. 아울러 그들이 농작물을 타작을 하는 모습이나 길쌈을 하는 모습 등은 한국과 유사하다. 체질적인 측면에서도 한족이 아니라 한국인과 유사하다. 생김새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그들이 고구려 유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노래이다. 먼 오랜 옛날 전쟁에서 져서 두 개의 강을 건너 오게 되었으며 하나의 강은 맑았고 다른 하나의 강은 탁했다는 말을 했다. 하나는 압록강, 다른 하나는 양자강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황하강과 양자강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들은 언제인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항상 후손들에게 그런 스토리가 담겨 있는 노래를 대대로 전했다. 심지어 자신들의 옷에 옛조상들의 땅이 그려진 문양을 새겨서 전하게 했다. 왕궁성을 그대로 새기기도 한다. 그만큼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강력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이러한 점은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그냥 묘족은 중국에 존재하는 우리와는 전혀 별개의 호기심의 대상일 뿐인 것이다. 얼마전 쯔위 사태 때문에 중화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주로 중화권의 시장을 염두해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묘족에 관해서는 이런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제기해주고 있다. 우리 스스로에 관한 역사와 정체성에 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공론화가 필요한 것이다.
최근 길림성에서 중국 측이 윤동주 시인을 조선족 시인이라고 규정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한국시인단체가 집단적인 행동을 모색한 적이 있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의 안내판에 기재한 내용이 조선족 시인이라고 할 때, 중국내 소수민족 출신에 불과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윤동주 열풍이 불고 있는 것과 달리 윤동주 시인은 그 정체성이 해체되었던 것이다.
중국 측에 분노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대해 왔는지 반성할 대목인 것이다. 아니 앞으로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문제제기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중국에서 한류열풍이 불고 그들의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제대로 문제제기 할 수 없을 지 모른다.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표기한 생수 광고에 김수현과 전지현이 그대로 출연한 것은 대표적이다. 이런 문제에 묘족에 관한 것도 이에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적인 상황에서 잃어버린 역사를 찾고 그것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내는데 대중미디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한국의 현재 분위기는 역사와 정체성을 내놓고라도 수익을 챙기는데 더 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한에서는 윤동주이나 묘족도 결국 중화국의 것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정신과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과 국가는 생존을 할 수 없는 데도 말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