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손 뗀 현정은…'해운여걸 시대' 끝나
현대상선, 현대증권 빠지면 현대그룹 중견기업 규모로 축소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과 같은 길 걸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 해운업계를 이끌어 왔던 현정은, 최은영(유수홀딩스 회장, 전 한진해운 회장)의 ‘해운여걸 시대’도 종말을 고하게 됐다.
현정은 회장은 지난 3일 이사회에서 현대상선 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오는 18일 주주총회에서 확정되면 현 회장은 대주주 신분 외에는 현대상선과의 연결고리가 사라지게 된다.
현재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글로벌을 통해 19.78%의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유지하고 있는 대주주 신분도 채권단이 출자전환하게 되면 사라지게 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채권단의 출자전환 여부와 규모, 시기에 따라 지분율은 달라지겠지만 출자전환이 이뤄질 경우 현대상선의 최대주주 지위는 현대엘리베이터에서 채권단 쪽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현대상선의 용선료 삭감, 비협약 채무 조정 등이 이뤄져야 출자전환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상선은 호황기 때 8~10년간 장기 계약을 한 탓에 시세보다 5~10배 높은 금액의 용선료를 지급하고 있으며 연평균 2조원에 달한다. 회사측은 이를 기존보다 20~30% 인하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지난달 말 용선료 협상단을 해외로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가 해결돼 채권단이 출자전환에 나설 경우 최소 현대엘리베이터-현대글로벌보다는 많은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채권단이 출자전환한다는 건 현대상선 지배권을 확보해 매각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상선은 지난 3일 이사회에서 오는 4월 21일부로 기존 주식 7주를 1주로 병합하는 방식의 7대 1 감자를 결정해 최대지분 확보에 필요한 출자전환 금액 부담도 크게 경감된 상태다.
현정은 회장의 현대상선 하차는 공교롭게도 1년여 전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의 한진해운 하차와 맞물려 ‘해운여걸 시대 종말’ 이라는 결과를 낳게 됐다.
현 회장과 최 회장은 남편을 여의고 각각 국내 양대 해운회사의 경영권을 물려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해운 업황 악화 이전까지 ‘금녀(禁女)의 영역’이었던 해운 대기업을 순조롭게 이끌면서 ‘여걸’로 불려왔다.
현정은 회장은 2003년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의 타계 이후부터, 최은영 회장은 남편인 고 조수호 회장의 타계 이듬해인 2007년부터 각각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황 악화가 장기화되면서 양대 해운업체도 잇단 경영악화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됐고, 최은영 회장의 경우 2014년 11월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한진해운 주식을 모두 팔며 ‘해운여걸’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현재는 기존 한진해운 모기업이었던 한진해운홀딩스 사명을 유수홀딩스로 변경하고 유수로지스틱스, 싸이버로지텍 등 남은 자회사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현정은 회장은 최 회장보다 좀 더 오랜 기간을 버티는 뚝심을 발휘했지만 장기 불황과 호황기 때 체결한 장기용선계약의 족쇄에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현대상선과 현재 매각이 추진 중인 현대증권이 현대그룹에서 빠져나갈 경우 현 회장의 처지 역시 최 회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게 된다.
현대그룹은 기존 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각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서 현대상선과 현대증권이 빠지면서 현대글로벌, 현대엘리베이터 및 지난달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으로부터 지분을 매입한 현대아산 정도가 주력인 중견기업 수준으로 전락하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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