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투표 말고 쉬시라” 총선 막말 역사 살펴보니...
막말로 선거 판도 바꾸거나 개인에 악영향
노인 비하 - 여성 비하 - 지역 갈등 조장
정치판을 흔히 ‘말의 전쟁’이라 한다. 정국을 한 마디로 요약한 말은 정치인의 존재를 각인시킬 뿐더러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데 큰 몫을 한다. 훗날 ‘명언’으로도 회자된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은 유신시절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은 무릇 서생적 문제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 있어야 한다”며 지도자는 이상과 현실이 적절히 조화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막말은 다르다. 도 넘은 말 한 마디는 국민의 거센 비판은 물론, 자격 논란까지 불러일으킨다. 이로 인해 당과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정치판을 떠난 이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총선을 90여일 앞두고 여야가 ‘말’에 예민한 이유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35% 발언’으로 주목되는 그간 여야의 총선 시즌 막말을 정리했다.
총선 판도 바꾼 고마운(?) 막말
총선 판도에 영향을 미치거나, ‘분노 상승’으로 투표율을 올렸다고 평가받는 막말도 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둔 3월 26일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노인 폄하성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정 의장은 “(이번 총선에서) 60대 이상과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며 “그 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했다.
이후 정 의장은 말실수라고 해명했지만, 당시 대척점에 있던 한나라당은 “실언이 아닌 논리적 사고에서 나온 것으로, 60~70대 반대세력으로 선전하며 20~30대 결집을 유도한 의도적 발언으로 의심된다. 정 의장은 진정한 뉘우침을 진실고백으로 가름하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정 의장의 이 한마디는 총선에서 보수 성향이 강한 노인층을 결집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정 의장은 발언의 책임을 지고 비례대표 후보를 사퇴했고, 2003년 참여정부 출범으로 ‘황태자’라 불렸던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막말이 총선 결과를 바꿨다. 팟캐스트 ‘나꼼수’ PD인 김용민 서울 노원갑 야권 단일 후보가 막말 논란으로 무너지면서 경쟁자가 반사이익을 봤다.
김 후보는 8년 전 방송에서 “지상파 텔레비전 SBS, MBC, KBS가 밤 12시에 무조건 떡영화(성인물)를 2~3시간씩 상영을 하는 거다”, “피임약을 최음제로 바꿔서 피임약이라고 팔고는 안에는 최음제예요”, “유영철을 풀어가지고 부시, 럼스펠드, 라이스는 아예 XX(성폭행)을 해가지고 죽이는 거예요” 등의 발언을 했다.
당시 김 후보는 주가 상승 중이었고, 언론에서도 그의 우세를 점쳤지만 결국 낙선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후보가 ‘막말 파동’의 후유증으로 낙선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당시 민주당이 접전지역에서 패배한 이유라는 말도 나왔다.
여야 신경전·비난 여론 악화 발언
총선에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았지만 후보 개인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여야의 신경전을 불러 일으킨 막말도 있다.
2012년 19대 총선의 경북 고령·성주·칠곡 후보였던 석호익 전 KT 부회장이 과거 여성비하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나 결국 공천을 박탈당했다. 석 전 부회장은 2007년 5월 21세기 경영인클럽 조찬강연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진화했다”며 “여성이 ‘OO' 하나가 더 있지 않느냐” 발언해 거센 비난 여론을 형성했다.
이에 대해 석 전 부회장은 한 매체와 통화에서 ‘고등동물일수록 많이 분화되고 OO이 많다고 한다. 사람도 이런 견지에서 보면 당연히 여성이 우월할 수밖에 없다’는 생물학자 저서를 인용했다고 해명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석 전 부회장의 공천을 취소했고, 이에 불응한 석 전 부회장은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지난 발언도 파문을 일으켰다. 유 전 장관은 JTBC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 먹어도 35%는 지지할 것”이라며 “35%가 새누리당의 최소 지지율이다. ‘탄핵 역풍’ 때도 정당 득표율이 36%였다. 1987년 13대 대선 때 노태우 전 대통령 득표율이 36%였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역대급 막말”이라며 발끈했다. 신의진 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을 비하하는 것도 모자라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까지 모독하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히다”며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B급 수준 저질 막말이 전직 장관 입에서 나왔다니 들은 귀를 씻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이를 놓고 누리꾼의 의견은 분분하다. “유 전 장관 발언의 핵심은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을 수 있다는 주장이 아니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얼마나 단단한지이다. 여당은 독해력이 부족하다” “이런 사람을 장관까지 시켰다니 (정치인은) 거기서 거기” 등의 반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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