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이재현 회장 실형, 법의 관용은 실종되었나
<칼럼>배임액수 확정 안되는 사건 구성 요건 증명 안돼
개인이나 기업이나 나라 경제 회생 위해서도 선처를...
CJ그룹 이재현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5일 파기환송심에서 횡령,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했다.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에서는 집행유예형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많았었지만, 법원은 “대기업 총수의 사회적 책임을 묻겠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집행유예형을 기대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본다. 선천적 유전병(CMT)을 앓고 있는 데다가 신장 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건강이 워낙 좋지 않아 수형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부 감염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전히 면역억제제를 투여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이 회장은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법원에 출석했고 법원 측에서도 이 회장의 건강상태를 잘 알고 있는 지라 재판중에도 모자를 계속 쓰고 있게끔 허락도 해줬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도 지난 9월 “일본 부동산 관련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가중처벌 조항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배임)을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하여 집행유예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이 사건은 재상고할 방침이라고 들었다. 보통 재상고까지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재상고해도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잘 없다. 아마도 이 회장 측에서도 이를 모를 리 없겠지만 실낱 같은 희망을 갖고 매달리는 것으로 보여져 참으로 안타깝다.
이 사건에 대한 담당 재판부의 고심이 매우 컸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재판부는 선고 전에는 방청객에게 공소사실 및 소송경과요약표를 배포하였고, 선고 후에는 파기환송심 판결요지(보도자료)까지 배포하였다. 이런 일을 두고 재판부의 친절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좀처럼 없던 일이다. 그만큼 고심했다는 의미이겠다. 또한 재판부는 A4 용지 77장 분량의 판결문을 썼고, 그 판결문에서 실형을 선고하는 이유를 자세하게 적었다. 또한 이 회장이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차명주식 보유는 오로지 조세 포탈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며, 차명주식을 대부분 정리했다고 했다.
포탈세액·가산세까지 모두 납부했으며, 업무상 배임 관련 피해를 회복했고,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했으며, 반성하고 있다고 재판부는 법정에서 직접 설명했다. 이 부분에서도 2년 6개월의 실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재판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또한 건강한 사람에게 2년 6개월의 실형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벼운 형량이라고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소회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이 사건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배임)을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한 대법원의 태도는 옳다. 형법상의 배임죄와는 달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배임죄에서는 손해액이 범죄성립요건(구성요건)이다. 그런데 배임액수가 확정될 수 없는 이 사건에서는 구성요건이 증명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
둘째,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은 이 회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배임죄를 적용하지 아니하였다. 대신 형법상의 배임죄를 적용하였다. 그런데 배임죄를 규정한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형법의 문언(文言)은 분명 배임죄를 “손해를 가한 때”에 성립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사건에서 손해가 정확하게 얼마나 발생하였는지에 대한 증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에게 배임죄 유죄를 선고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법원은 지금까지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손해발생의 위험만 발생했다면 처벌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는 형법의 규정을 잘 못 읽은 것이다.
법문에 따라 손해발생이 확인된 경우에만 처벌하여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이 회장이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일본의 한 회사가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서 CJ그룹의 일본 계열사가 연대보증을 제공 한 것이 문제되었다. 이것이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일본 회사는 이 회장 개인회사나 다름 없다고 판단되고, 그 개인회사에 CJ그룹 계열회사가 연대보증을 한 배임이 된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이 회장 개인회사가 빌린 돈을 갚지 않았다거나 갚을 능력이 없었는지는 다루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개인회사의 변제자력을 인정한 바 있다.
다시 말하면 이 회장 개인회사가 빌린 돈에 상응하는 담보를 제공하였고 또한 개인회사의 수익을 통하여 원리금을 상환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대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갚지 못할 염려는 없었다는 것이니, 말하자면 아직 그 계열사가 연대보증채무를 대신하여 이행할 손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서울고등법원은 이미 손해가 발생한 것처럼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법원은 지금까지 “재산상 손해”는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손해발생의 위험성을 초래한 경우를 포함한다고 판시하여 왔으므로 이번의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만이 특별히 튀는 판결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도 종래와 다름 없이 실제로 손해가 얼마나 발생하였는지에 대하여는 확인하지 못한 채 손해발생위험을 가져왔다고 하여 처벌하였다. 이 점은 유감이다. 계열회사가 개인회사에 연대보증을 제공해주었더라도 그 개인회사가 변제자력이 있어 계열회사에 아무런 손해가 발생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일본 계열사에게 손해발생의 위험이 초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필자가 보기에는 피고인의 배임죄 부분은 무죄가 되어야 하는지 좀 더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까다로운 법리논쟁을 계속하여야 할 것이나, 이곳에서는 생략한다.
셋째, 주지하는 바와 같이 피고인은 형을 살기에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파기환송 전 판결의 형량에 건강문제가 다 반영됐고, 근본적으로 건강 문제는 형량 문제가 아니라 형 집행의 문제”라며 “다만 이재현 회장이 범행으로 얻은 이득액을 단정할 수 없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적용에는 문제가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여 감형했다”고 밝혔다. 백 번 옳은 말이고, 이와 같은 추상같은 판결은 법의 엄정함을 명확하게 드러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판결을 접하고 한 가지 사건이 떠 올랐다. 태광그룹 모자의 횡령사건이다. 보통 같은 혐의로 가족 둘이 피소될 경우 구속은 1명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모자 모두가 구속되었다. 모친 이선애 여사는 횡령 등 혐의로 84세의 나이로 2012년 2월 법정구속 돼 구치소 생활을 했다. 그의 유일한 아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도 간암 3기였지만 구속되었다. 이선애 여사는 구속된 지 2개월째인 2012년 4월, 핫팩(손난로)에 손가락이 3도 화상을 입을 정도로 인지·감각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치매, 뇌경색 등으로 형집행정지 되었다가 2014년 3월 재수감되었고, 그 후 다시 형집행 정지되었지만 이미 병세는 돌이킬 수 없이 깊어져 2015년 5월 사망하였다.
지난 96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될 당시 매출액 1조 7천억원의 식품 기업에 지나지 않았던 CJ그룹은 15배 이상 가파른 성장을 거듭한 결과 재계 14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룹 총수인 이재현회장이 부재한 지난 3년간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2013년 25조 6천억원, 2014년에는 26조 8천억원으로 4% 성장에 머물렀으며, 올해도 사실상 답보 상태일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해외 시장 개척이나 대규모 M&A 등 투자 집행 부분에서는 더욱 공백이 컸다.
특히 2012년에는 외식 및 문화콘텐츠 사업의 글로벌 진출을 확대하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에 따라 당초 계획 대비 20%를 초과하는 투자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공백 사태가 빚어진 이후 투자 실적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며 올해는 물론이거니와 내년 역시 이마저도 계획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경제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기업들 역시 투자는 커녕 몸을 움추리고 있으며 서민들은 근심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인이 사명감을 갖고 경제부흥에 앞장서야 할 골든타임이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 절망 속에서는 절대로 병이 치료될 수 없고 사람을 살릴 수 없다.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하지 않는가. 법에게 일말의 인간미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환자인 이 회장에게 진정한 선처가 이뤄지길 바란다.
글/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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