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늦었다고..." 보호 못받는 탈북자들 '눈물 샤워'
126명 남한 입국 1년 이후 신고했다가 지원 못받아
체류국에 10년 있었다고 비보호 분류도…제도개선 시급
# "1999년 11월 딸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넜어요. 중국에서 살면 그나마 여기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나왔죠. 하지만 중국에서도 생활고에 시달렸고 마지막 희망은 남한이었죠. 남한으로 가려면 ‘국제결혼’ 밖에 방법이 없는거예요. 그래서 결혼해서 중국인 신분으로 딸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죠. 남한에서 생활하다가 탈북자에게 정부 지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서에 신고해서 하나원까지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남한에 들어온 후 1년이 지난 뒤 신고라 ‘비보호 대상자’ 처분을 받았죠. 앞이 캄캄했습니다. 데려온 딸에게도 지원이 없습니다." -비보호북한이탈주민 김미선 씨(가명)
# "2012년에 조선족 가짜 신분을 가지고 한국으로 일을 하러 왔어요. 그 당시에는 북한이탈주민으로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죠. 남한에서는 그저 하루 12시간씩 일했고 번 돈은 중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송금을 했죠. 그러다가 탈북민 정착지원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됐고 신고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비보호 대상자’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2012년 입국한 사람이 2015년에 신고해서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비보호북한이탈주민 A씨
소수 취약계층 중에서도 ‘극소수’로 분류되는 ‘비보호북한이탈주민’들의 하소연이다. 이들의 신분은 ‘탈북자’지만 ‘탈북자’로 대우받지 못해 남한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인과 결혼해 중국인 신분으로 입국하거나 위조 여권을 받아 입국하는 등 각자의 사연을 안고 어렵게 남한에 도착했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전무하다. 탈북자임이 분명한데, 탈북자로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인권사각지대’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통일부 정착지원과에 따르면 그들이 ‘비보호 탈북자’로 분류되는 기준은 △항공기 납치, 마약거래, 테러 등 국제형사 범죄 여부 △살인 등 비정치적 범죄 여부 △위장탈북 혐의자 △체류국에 10년 이상 생활 근거지를 둔 사람 △국내 입국 후 1년이 지나서 보호신청한 사람 △그 밖에 보호 대상자로 정하는 것이 부적당하다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등 총 여섯 가지다.
정재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정착지원본부장은 12일 NKDB가 주최한 ‘비보호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 및 정책제언’이라는 제하의 세미나에서 “정부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정책방향은 인도주의에 입각한 특별한 보호라고 법률에 명시하고 있지만 그 범위를 보호 대상으로 한정짓고 있다”면서 “국내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에 대하여 보호대상에게만 인도주의에 입각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한다면 아무런 지원 없이 한국 사회로 내보내지는 비보호 북한이탈주민에게는 비인도주의적인 처우를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2003년 이후부터 올해 8월까지 ‘비보호’로 분류된 탈북자는 172명이다. 이 가운데 77.3%인 126명이 국내 입국 후 1년이 지난 후 보호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탈북자로서의 정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탈북자(보호대상자)들의 경우 12주간의 하나원 교육을 이수한 후 퇴소하면 정착지원금 700만원(1인 기준)이 분할 지급되며 1인 세대 기준, 1300만원의 주거지원금과 임대 주택까지 알선해 준다. 직업훈련 이수 시간에 따라 최대 17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취업 후 3년간 근속하게 되면 수도권 근무자는 1650만원, 지방근무자는 1950만원의 취업장려금도 수령할 수 있다.
하지만 ‘비보호’로 분류된 탈북자들이 받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은 하나원 퇴소 후 받는 긴급생활안전 자금 100만원과 일반 남한 국민들과 동일하게 일정 기준을 충족 시에 받을 수 있는 생계 급여뿐이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박인호 데일리NK 북한연구실장은 “탈북자들을 보호, 비보호로 구분짓는 제도를 없애야 한다”면서 “본래 보호와 비보호로 구분짓는 취지는 탈북자 가운데 간첩이나 안보상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미 이 작업은 국정원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보호와 비보호를 구분지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욱이 탈북자를 보호, 비보호로 구분짓는 통일부 산하 협의회가 그 구성원을 뜯어보면 이러한 판단 자체를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행자부나 보건복지부 등의 고위 공무원들이 참여하는데, 결국 국정원과 통일부 혹은 기무사령부 등에서 방향을 정하면 추인하는 정도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보호대상자들의 정착 지원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협의회가 보호대상자를 걸러내는 일까지 수행하는 것은 과잉행정”이라면서 “과잉 행정은 책임회피 및 전문성 결여라는 두 가지 문제를 잠재적으로 갖는데 비보호 대상자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이 같은 기형적 행정구조에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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