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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 짓다가 열받은 사연...공무원의 역할 다시 생각하다


입력 2015.10.18 08:51 수정 2015.10.18 09:09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문제를 해명하면 또 다른 문제 들고나와 진빼기

필자는 몇 달 전 공무원의 임무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한 사건을 겪었다.

필자는 정년을 대비해 5년 전 시골에 밭을 하나 사서 다양한 과일 나무들도 심고 우리가 먹을 유기농 채소와 농작물도 재배하고 있다. 농장이 부산에서 상당히 멀어 하루 이틀 머물면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쉬고 잘 데가 필요했고, 그래서 4년 전 관할 관서에 신고하고 농막을 하나 지어 이용해 왔다.

그런데 농기구가 하나둘 늘어나다 보니 농막 하나로는 부족했고 창고용으로 또 하나의 가설 건축물이 필요했다. 그동안 관리기, 예초기 등과 같이 잠을 잤는데, 비좁고 불결하고 불편하였다.

또 하나의 농막(혹은 창고)을 신고하러 관할 관서에 가서 집사람은 사무실 안에 들어가 업무를 보고 필자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매미 소리를 들으며 앞산의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집사람이 들어간 지 한 참이 되었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도면을 그리고 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다른 민원인들이 많이 있을 수도 있으며 기타 사정이 있을 수 있어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인지 두 시간인지 모르겠지만 한참 후에 집사람이 나와 흥분하면서 하는 말이 담당 공무원이 온갖 구실을 대면서 접수를 하지 않으며 농장에 한 번 가서 거주용으로 사용하지 않는지 조사해 봐야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 가 조사하겠다는 말이 상당히 불쾌했지만, 그래 가보고 싶으면 가보자고 우리는 승용차로 앞서고 그 공무원은 트럭을 타고 뒤따르면서 몇 분 후에 농장에 도달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그가 하는 말을 통해 그가 사정을 이해한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 후 몇 주에 걸쳐 그 공무원과 필자 사이에는 우리의 재산권을 두고 전화를 통한 공방이 오갔다. 담당 공무원이 문제를 거론하면 필자는 그것을 반론하는 식이었다. 필자가 한 문제에 대해 논박과 설명을 하면 그 공무원은 다른 문제를 들고 나왔고, 그 다른 문제를 논박하고 설명하면 또 다른 문제를 들고 나오기를 계속했다.

농림축산식품부 농지법 시행규칙 제3조의 2에는 농막과 간이 저온 저장고는 신고만 하면 세울 수 있는 가설 건축물이다. 이런 것들은 땅에 붙여 지으면 안 되고 지상에서 30센티 이상 떼어서 지어야 하며 연면적 6평 이하로 지어야 한다. 이런 가설 건축물에 전기 시설을 할 수 있었는데 재작년 말부터는 수도 시설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농막을 법규에 맞게 지어 신고를 했고, 이런 저런 세금을 내면서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는 것이었다.

처음에 담당 공무원은 규정상 농막이 2개면 안 된다고 했다. 하나를 창고로 쓸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공무원은 그것을 농막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그 공무원이 제기한 농막 개수의 문제에 대해 규정에 2개는 안 된다고 해 놓지 않았다고 지루하게 법리 논쟁을 전개했다.

논전이 여러 날 계속된 후, 그는 농막의 연면적이 6평을 넘으면 안 되는데 2개의 가설 건축물의 연면적이 6평을 넘는다고 주제를 바꾸었다. 필자는 연면적이 6평 이하라고 응답했다. 그는 한 필지 안에서 심지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모든 건물의 면적을 합친 것이 연면적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하나의 건축물에서 지상, 지하 등 각층 바닥 면적의 합계가 연면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공무원에게 사전과 인터넷을 찾아보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공방을 계속하다가 전에 이야기했던 창고로 쓸 것이라는 말 대신에 ‘당신이 팩스로 보낸 공문 안에 농막 말고 간이 저온 저장고를 지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용도로 쓸 것이다’고 했더니 며칠 후에 ‘당신이 옳다’며 승복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저온 창고냐고 한다면 에어컨이라도 설치할 생각이었지만, 그는 더 이상 따지지 않고, 한참 후 세금 통지서를 보내왔다.

해결이 되었지만 필자는 내 재산권을 내가 행사하는 데 이렇게 제약이 많구나 하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이 일을 계기로 필자는 공무원이 왜 저럴까 나름 답을 찾으려고 고심하였다. 그 결과 행정학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행정학 교수로서 내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쳤고 가르치고 있는지도 반성하게 되었다.

물론 그 공무원은 자기가 맡은 업무에 집요하리만큼 철저했다. 규정을 하나하나 따져 가면서 자기 생각에 규정이 말하고 있는 바를 실행하려고 하였다. 필자나 집사람이 개인적으로는 불쾌했지만 그런 면에서 그의 업무 태도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그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었다. 그 공무원이 자기 나름으로 법령에 충실하려고 했지만, 그는 공무원의 근본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공무원의 역할은 정부의 역할로부터 나온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것에 관해 많이 생각해 온 우리 자유주의 학자들은 정부의 가장 근본적인 역할은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는 확실한 길이라는 것이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근본적인 역할이 국민의 재산권 확립이라면, 공무원의 근본적인 역할도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간 행정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쳤는가? 이것저것 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빠뜨렸다. 공무원의 역할이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이라고 얼마나 가르쳤는가? 정부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라고 가르쳤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치긴 했다.

또 어떤 학자들은, 효율에 치중하는 것을 반성하면서, 소외된 계층에 사회적 정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블루밍턴학파 공공선택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행정학 가르침은 정부나 공무원의 역할이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일이 별로 없다. 행정학 교육이 이러하므로, 그런 책을 읽고 공부한 공무원은 국민의 재산권을 제약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별로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공무원이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면 국민들이 부유하게 된다. 산업 혁명은 더 부강한 국가였던 프랑스와 스페인이 아니라 재산권이 보호되었던 영국에서 일어났고, 그 후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소련과 동유럽은 국민들에 대한 재산권을 보호하지 않아 빈곤하게 되었고, 결국 체제가 무너졌다. 중국은 재산권을 보호하기 시작하자 경제 성장이 급속도로 빨라졌다.

1990년대 초 대개 에르난도 데 소토의 주도로 이루어진 페루의 재산권 개혁으로 페루 국민들의 삶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부유하게 된 것은 확고한 재산권 보장 때문이다.

김정호 교수의 책 제목처럼 ‘땅은 사유 재산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토지는 온갖 명분으로 재산권 행사가 억제되고 있다. 내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데, 왜 정부와 공무원은 가설 건축물의 종류, 개수, 평수, 용도 등을 제한하고 규제하는가? 정부와 공무원이 농사짓는 사람보다 농사에 관한 지식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정부와 공무원은 공익을 추구하는데 농사짓는 사람은 사익을 추구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지식과 유인에서 정부와 공무원이 더 잘 알고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일 뿐이다.

정부는 갖가지 규제로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강화해야 한다. 행정학 교수는 공무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국민의 재산권 보호와 강화임을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공무원은 자신의 임무가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법령의 해석과 집행도 그런 방향으로 해야 한다.

글/황수연 경성대 교수·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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