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해산' 진보 진영에서도 주사파 왕따될까

운동권 출신 인사들 "이석기 세력 부활? 타격입을 것"

하태경 "제2 통진당 만드려해도 내부 분란 필연적"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 및 정당활동정지가처분신청 사건에 대한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 ⓒ데일리안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박탈을 판결한 19일 저녁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대통령선거 2주기를 맞아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에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진보세력의 일익을 자처하고 있었던 통합진보당이 헌정 사상 최초로 해산되면서 진보진영의 세력구도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통합진보당을 이끌어온 주도세력은 민족해방·자주(NL)계열 중에서도 결집력과 활동성이 왕성했던 ‘이석기 그룹’이었다. 이들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잔존세력으로서 진보진영에서 비율상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결집력을 과시하며 진보진영에서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하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대중정당으로 입지를 다지던 ‘이석기 그룹’이 공중 분해되면서 빈 공간을 어떤 진보세력이 채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진보진영 동반몰락?…"진보진영 지형도 재구축"

과거 RO구성원, 학생운동권 등 진보운동가 출신의 인사들은 통합진보당이 ‘진보’의 이름에 ‘먹칠’을 하면서 진보진영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쳤지만 진보진영이 ‘이석기 그룹’과 함께 동반 몰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오히려 통합진보당 해산을 계기로 ‘종북’을 털어내고 ‘정의당’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진보진영의 재구축 혹은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진보세력의 도약 가능성 등을 점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진보진영에 ‘이석기 그룹’만큼 결집력과 활동성이 강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반적인 진보진영의 침체나 진보진영 간 내분에 휩싸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보의 그늘’을 통해 통합진보당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는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19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일단 새정치민주연합을 제외한 진보진영에서는 정의당이 힘을 갖게 될 것으로 보지만 지금 당장 진보진영의 재편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고 전망했다.

한 대표는 “정의당은 통합진보당처럼 강력한 ‘자주파’의 이념이나 세력화 돼있는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 “정의당은 집단성이 강하다기 보다는 노회찬, 심상정 의원 같은 개별 스타들의 정당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RO에 관여했던 유재길 시대정신 사무처장도 “통합진보당이 해산됐다고 PD를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이 위축될 것 같지는 않다”면서 “PD들은 통합진보당에서 빠져나와 정의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입지가 넓어졌다고 봐야한다”고 평가봤다.

유 처장은 “또한 최근 NL종북 세력을 제외한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통합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면서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진보세력 전반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점은 있지만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입지가 넓어지면서 진보진영 지형도의 재구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운동권 출신의 인사는 “헌재 판결로 진보진영이 반대시위를 강하게 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장기적으로 보면 좌파진영, 시민단체가 또 다시 내분에 휩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기 그룹'의 부활 가능성은?…"주축 붕괴돼 가능성 적어"

아울러 진보진영의 지형도 재구축이 이뤄지는 구도 속에서 통합진보당의 부활 가능성은 미미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진보진영은 과거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을 분당사태를 거치면서 ‘이석기 그룹’의 종북적 성향, 반민주적인 행태를 두 차례나 체감했기 때문에 이들이 더 이상 발붙일 곳은 마땅치 않다. 특히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면서 주축이었던 국회의원 5명 조차 모두 의원직을 상실한 상황이다.

다만 ‘이석기 그룹’이 민주노동당에 기생하며 영향력을 키워왔던 것처럼,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제2의 ‘이석기 그룹’이 진보진영에 기생하며 다시 부활을 꿈꿀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RO성원이었던 한 인사는 본보에 “통합진보당의 잔존세력 가운데 일부 사람들이 다른 진보 정당에 들어가 기생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하지만 정의당 등 진보정당들은 이미 민노당·통합진보당 분당 사태를 겪었기 때문에 기생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오히려 핵심세력은 지하로 다시 들어가고 일부 사람들은 사회단체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유연한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다만 이런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유재길 처장은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세력이 완전히 없어진다고 볼수는 없지만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면서 “한동안 반대 시위를 벌이는 등 투쟁노선을 선택하겠지만 통합진보당 주요 멤버들은 어느곳에도 발 붙이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기홍 대표도 “사람들이 모인다고 정당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정당을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통합진보당은 그것이 없어진 것”이라면서 “현재 통합진보당 잔존세력 가운데 세력을 재규합할 수 있는 세력이나 힘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소수정당 수준의 부활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통합진보당 규모로 회복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운동권 출신의 인사 역시 “이석기라는 핵심세력이 위축되었기 때문에 또다른 핵심세력이 부활할 수 있지만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지역이 나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들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통합진보당이 부활하려면 전혀 새로운 얼굴들을 찾아야 하는 숙제가 있다”면서 “설사 찾는다 해도 이 새로운 사람들이 통합진보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줄지는 의문이다. 만약 제2의 통합진보당을 추진한다면 그 과정중에 분란은 필연적이다”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