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환풍구 사고, '진흙탕 개싸움'이 어려운 이유
사건의 본질 흐리는 정치싸움 생각 말고 사고 수습·재발 방지책 마련에 힘 모아야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규모 인명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진흙탕 개싸움(泥田鬪狗)'이 발생한다. 사고 수습이나 재발 방지 대책 등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주변의 누군가가 불행한 일을 당하면 동정하고 함께 아파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같은 인간의 본성을 억제, 혹은 무시하고 누군가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이익이라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다. 주로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대형 참사만큼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슈는 없고, 그렇게 집중된 이목을 상대 진영에 대한 비난으로 돌리는 것만큼 효과적인 정치 마케팅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7일 발생한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에서는 왠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두 조용하다. 왜일까.
보수와 진보 진영에 속한 누군가는 사고 발생과 동시에 이번 일을 누구의 책임으로 돌려 매장시키고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빌미로 삼을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죄를 물을 상대의 진영 구분이 애매하다. 행사의 주최자로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경기도와 성남시의 단체장은 서로 진영이 다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새누리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다.
둘을 싸잡아 비난하자니 누워서 침 뱉기 꼴이고, 상대 진영만 비난하자니 명분이 서질 않는다. 행사를 주관한 언론사는 보수 혹은 진보의 색채가 강하지 않은 경제지인지라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책임 공방은 성남시와 이데일리간 ‘국지전’에 머물고 있고 보수와 진보 진영의 전면전으로 확산되진 않고 있다.
행사 책임자 쪽이 애매하다면 무너진 환풍구를 만든 업체의 과실이나 불법행위라도 찾아내 지자체 혹은 정부 기관의 관리감독 책임을 엮어 진보향(지자체) 혹은 보수향(정부) 공세의 빌미를 만들어낼 텐데 이 역시 마땅치 않다.
환풍구가 하중을 얼마나 견뎌야 하는지에 대한 법적 기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환풍구에 오르지 못하도록 설치 위치를 높이거나 주위에 펜스를 치는 등의 규정도 전무하다.
아마도 환풍구 안전에 대한 무책임은 현 정권은 물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여러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 마디로 길거리나 광장 등 사방에 널려 있는(그리고 지금껏 우리가 그 위로 수 없이 지나다녔을) 환풍구는 ‘원래부터 저 꼴’이었을 것이기에 보수-진보 싸움이 끼어들 틈은 없다.
그래서일까. 사고 발생 다음날인 18일 잇달아 사고대책본부를 찾은 여야 지도부는 한목소리로 사고 수습과 재발방지 마련에 대해서만 언급했을 뿐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는 엿보이지 않았다.
“판교 사고처럼 환풍구 붕괴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당 차원에서 종합점검해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겠다.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안전행정부에 전국에 있는 환풍구에 대한 안전점검을 부탁했다.”(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고 수습을 위해 경기도 국감일정을 연기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 지금은 무엇보다 사고 뒤처리가 우선이다. 사고 수습과 피해자 보상,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해 달라.”(문희상 새정치민유연합 비상대책위원장)
이날 여야 지도부의 발언은 일단 판교 참사가 정치권의 싸움, 나아가 보수나 진보 성향이 강한 대중들의 싸움으로 확산되긴 힘들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도 굳이 사람 목숨으로 장난을 치며 ‘이전투구’ 판을 만들어 내는 이가 있다면 그가 어느 진영에 속해있건 대중의 비난은 그에게로 집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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