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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은행원들 "내 직업이 원망스럽습니다"


입력 2014.07.26 08:48 수정 2014.07.26 10:31        이충재 기자

무더기 징계 앞두고 울상 "은행 다니는 게 아니라 버틴다"

한 은행지점에서 예금주들이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행원들이 이직할까,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더라. 이래서 회사가 돌아가겠나."

은행들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각종 사고에 연루된 금융회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징계가 줄줄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제재심의 결정이 연기되면서 장기화 국면에 돌입했다. 이 때문에 긴장 속 기다림에 지친 은행권의 속은 곪아가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의 징계 대상 임직원만 최고경영자급 인사를 포함해 200여명이 넘는 등 대규모 제재조치가 예고된 상황. 제재대상에 속한 직원들 뿐만 아니라 옆에서 그 모습을 보는 동료들도 속앓이가 이만저만 아니다.

은행권에서는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라는 하소연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 은행권 인사는 현재 상황을 ‘빙하기’라고 했다. 가뜩이나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수익감소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상황인데 기약없는 감독당국의 제재만 바라볼 뿐, 은행권은 활기마저 잃은지 오래다.

더욱 고객과 접점지대인 영업점에서는 "요새 은행이 문제가 있느냐, 믿고 맞겨도 되는거냐"식의 애교섞인 불만을 들을 때마다 고객을 대하기 미안할 정도다.

무엇보다 은행권에선 땅으로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는 데 우려하고 있다. 주요 임원들의 거취 문제에 쏠린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져 있지만, 징계 태풍의 영향권에 함께 들어있는 일반 행원들은 의기소침이다.

은행권 고위관계자는 "언론도 임원들의 거취 등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지만 행원들 중에는 ‘내 직업이 원망스럽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고, 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실제 이번 징계 대상에 이름을 올린 은행원 A씨는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징계 처분을 기다리면서 가슴을 졸이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입사한지 10년 됐는데, 인사 문제나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직원은 "위에서 흔들리면 직원들은 소리 없이 죽어나게 마련이다. 다들 표정관리만 하고 있는 처지"라고 답답해했다.

고객과 대면하는 영업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당국의 제재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일반적인 관행이 자칫 법규 위반으로 지목될 수 있어 결제 도장도 쉽게 찍기도 두려울 지경이다.

더욱 제재를 받게 되면 '주홍글씨'로 남겨져 인사고과 점수에 치명타를 받을 수 있다.

은행권 한 인사는 "10년 이상 은행에 근무하면서 보람도 많았는데 탐욕은행으로 비춰지면서 자부심마저 잃게 됐다"면서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감독체계의 변화가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제는 스스로 거취문제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는게 업계 안팎의 분위기다.

이런 사정 속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유병언씨 일가와 청해진해운 관계사 등에 부실하게 대출해 준 금융기관에 대한 대규모 제재 절차도 남아 있어 첩첩산중이다.

제재 수위와 관계없이 "네들이 유병언에게 대출해준 은행이냐"는 낙인이 찍힐까 우려하고 있다.

이미 금감원은 지난달 유 씨 일가 등에 대해 부실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 30여곳에 대한 특별검사를 마무리하고, 제재절차에 들어갔다. 언론사 등을 통해 직접 회사명이 거론된 금융사는 여론의 유탄을 맞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때문에 은행권에서는 서로 다른 이유더라도 "이왕 맞을 매라면 빨리 맞아야"라며 여의도를 향한 볼멘소리만 터져나오고 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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