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전, 이변 없었지만 ‘패자의 품격’ 빛났다
전통의 강자들, 의외의 고전 속 진땀 뻘뻘
전술·정신력 앞선 언더독 ‘명경기 향연’
2014 브라질월드컵 16강전은 이변 없는 시리즈로 요약된다.
브라질,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독일, 프랑스 등 전통의 강호들과 각 조 1위 팀이 100% 생존하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달라진다.
상대적인 열세로 지목됐던 칠레, 멕시코, 스위스, 알제리, 미국 등은 눈부신 선전은 오히려 승자들을 무색케 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실제로 16강전 8경기 중 5경기가 연장전(승부차기 2회)으로 이어지며 역대 월드컵 16강 최다 연장 승부를 기록했다.
개최국이자 강력한 우승후보 브라질은 칠레의 견고한 수비와 역습에 고전하다가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훌리우 세자르 선방쇼에 힘입어 신승했다. 한국을 밀어내고 16강에 진출한 알제리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의 변화무쌍한 용병술을 바탕으로 강호 독일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저력을 과시했다.
조별리그 3전 전승으로 압도적인 1위를 달렸던 네덜란드도 멕시코의 저항에 혼쭐이 났다.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던 네덜란드는 종료 6분 사이에 2골을 몰아넣으며 힘겹게 역전극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후반전 추가시간에 아르연 로번이 얻어낸 페널티킥은 헐리웃 액션 논란을 일으키며 오히려 오점을 남겼다.
스위스와 미국도 각각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와 독일을 맞아 90분을 무실점으로 버텼다.
승부차기를 앞두고 막판에 아쉽게 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졌지만 아르헨티나나 독일로서는 상대를 우습게보고 방심했다가 졸전 끝에 가까스로 거둔 승리였다. 프랑스 역시 연장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나이지리아 골키퍼 빈센트 에네야마의 신들린 선방에 막혀 고전하다가 후반 막판 터진 연속골로 겨우 승리할 수 있었다.
칠레, 알제리, 스위스, 미국 등의 공통점은 탄탄한 조직력과 다양한 전술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강팀 등을 상대로 수비에 무게를 두기는 했지만 결코 수비만 한 것도 아니었다. 빠르고 정교한 패스와 역습으로 상대 문전에 지속적인 위협을 가하면서 강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경기내용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일방적인 승부는 콜롬비아와 우루과이의 대결이었다.
떠오르는 신성 제임스 로드리게스(5골)를 앞세운 콜롬비아는 '이빨 테러리스트' 루이스 수아레스가 결장한 우루과이를 힘들이지 않고 대파했다. 유일하게 언더독들의 대결이었던 코스타리카와 그리스의 연장 승부는 코스타리키가 승부차기 끝에 웃었다. 북중미의 복병 코스타리카는 자국 역사상 최초로 8강 신화를 달성하며 이번 대회 유일한 비유럽-남미권 8강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변이 없어도 16강전은 월드컵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명승부들로 채워졌다. 포기하지 않은 열정과 투혼으로 무장한 언더독들의 저력은 '지더라도 아름다운 패배'가 스포츠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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