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슬럼프, 김성근·박경완 그늘 벗어야 산다
올 시즌 4승 5패 평균자책점 4.44로 여전히 부진
김성근 감독 경질-박경완 부상 후 공교롭게 슬럼프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던 SK 에이스 김광현의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김광현은 올 시즌 9경기에 나와 4승 5패 평균자책점 4.44를 기록 중이다. 특히 지난 18일 한화전에서는 6.2이닝동안 무려 13피안타를 내주며 패전투수가 돼 자존심까지 상했다.
개막 전, 그 어느 때보다 최고의 몸 상태라고 자신감을 내비치던 모습은 볼 수 없게 된지 오래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목표로 내걸었던 메이저리그 진출은 고사하고 아시안게임 출전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대체 김광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김광현은 시즌 초부터 들쭉날쭉한 투구로 코칭스태프에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개막전이었던 넥센과의 경기서 5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지만 곧바로 7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이후 패-승-패-승을 거듭하다 지난 5일 롯데전에서 모처럼 연승 시동을 걸었지만 다시 2경기를 모두 패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부진의 가장 큰 이유로 단조로운 볼 배합이 꼽힌다. 그동안 김광현은 투 피치(직구-슬라이더) 위주의 볼 배합과 압도적인 구위로 타자를 찍어 눌렀다. 하지만 구질이 간파되고 타자와의 힘 싸움에서 밀리다보니 난타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김광현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성근 전 감독, 그리고 포수 박경완(SK 2군 감독)과의 준비 없는 이별이 멘탈적인 부분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김광현의 부상 후 슬럼프는 SK와 결별 또는 은퇴한 이들의 행보와 궤를 함께 한다.
2007년 SK로부터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데뷔한 김광현은 명 투수 조련사 김성근 감독의 지도 아래 전혀 다른 투수로 거듭났다. 고교 시절 유연하지 못했던 투구폼은 스트라이드를 더 넓게 벌리고 팔 각도를 들어 올리며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각이 컸던 슬라이더도 보다 빠르고 날카롭게 떨어져 리그 정상급 구질로 발전했다. 모두 김성근 감독의 조련덕분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했다. 사실 김 감독은 SK 시절, 단 한 번도 김광현을 칭찬한 적이 없다. 김광현은 지난 2009년 송은범이 완투승을 거둔 뒤 김 감독과 하이파이브에 이어 포옹을 하자 “나도 예뻐해 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노히트노런이라도 해야 안아주실 것 같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만심을 경계한 스승의 노련한 선수 다루기였다.
반면, 박경완은 김광현에게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다. 김광현은 데뷔 시즌부터 박경완의 능수능란한 투수리드에 공을 맡겼다. 그 결과 2년 차였던 2008년 16승 4패 평균자책점 2.39로 MVP에 올랐고, 2010년까지 4년간 48승을 합작했다. 같은 기간 3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SK 왕조 탄생의 일등공신이 된 두 사람이다. 특히 2010년 우승 후 박경완에게 꾸뻑 인사하며 얼싸안는 모습은 프로야구사 명장면 중 하나다.
하지만 2011년, 김광현과 박경완은 부상으로 결장하는 일이 잦았다. 급기야 8월에는 김성근 감독마저 경질돼 팀을 떠났다. 이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박경완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박경완의 리드와 김성근 감독 지도를 벗어난 김광현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4점대 평균자책점에 그치며 예의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김광현 야구 인생에 두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SK에서 경질되고 난 뒤 시즌이 끝나자 김광현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너를 지켜줄 사람이 없다. 지금까지는 내가 널 슬럼프에서 건져냈다면 이제는 혼자 나오는 방법을 찾을 때다. 더 큰 사람이 되려면 혼자 할 수 있는 힘을 찾아야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스승이 말한 그 때란 바로 지금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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