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솔잎'을 먹는 포스코의 앞날은...
<기자의 눈>철강 제외한 모든 계열사 구조조정 검토 대상…본업 철강에 집중
권오준 "대우인터내셔널 돈 잘 벌어" 발언은 '원매자 겨냥한 광고성 멘트'
수요-공급관계 변화에 따른 시황 변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철강, 화학, 해운, 조선 등 기간산업 참여자들은 호황때 돈을 많이 벌어 투자 여력이 생길 때마다 ‘사업 다각화’의 유혹에 빠진다.
본업의 시황과 무관하게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할 수 있는 사업부문을 가지고 있다면 호황 때 벌어 불황을 버텨야 하는 지긋지긋한 시황 사이클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해운 호황기에 쎄븐마운틴해운에서 발생한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레저, 중공업, 심지어 패션 사업까지 확장했던 C&그룹이나, 쌍용중공업을 모태로 향후 범양상선(STX팬오션)을 인수해 해운·중공업 분야에서 자금을 공급받아 무역, 건설, 에너지 등으로 규모를 키워나갔던 STX그룹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주력 사업인 해운·조선이 불황 사이클로 접어든 시점에서 투자 부담을 이기지 못해 해체 수순을 밟은 공통점도 갖고 있다.
이같은 과거사를 짚어보면 지난 19일 포스코 경영전략 발표회에서 “포스코를 제외한 모든 그룹 계열사가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밝힌 권오준 회장의 발언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한 마디로 이리저리 벌여놓은 일들을 정리하고 송충이의 본분에 충실해 솔잎(철강)을 먹는 데 주력하겠다는 얘기다.
다른 기간산업과 달리 철강산업은 그동안 시황 사이클이라는 게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수요 산업의 구매 담당자들이 강남 포스코센터를 찾아 줄을 서는, 판매자가 ‘갑’이 되고 구매자가 ‘을’이 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질 만큼 철강산업은 장기 호황을 누렸다.
포스코의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2000년대 중반까지는 20%를 상회했고, 2010년까지도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총알’이 많다 보니 M&A 시장에 굵직한 매물이 나올 때마다 포스코는 큰손으로 떠올랐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이미 2010년 포스코 그룹으로 편입됐고,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 후보로도 포스코가 단골로 언급돼 왔다.
하지만 최근 5년 사이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 철강업체들의 대대적인 확장과 장기 경기침체로, 공급은 늘고 수요는 감소하는 두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철강산업도 더 이상 시황 사이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포스코 영업사원들도 포스코센터를 나서 ‘고객’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아직 ‘손해 보고 장사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영업이익률은 5% 이하(2013년 4.8%)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포스코가 계속해서 ‘사업 다각화’를 고집한다면, 주주들과 투자자들의 눈에는 C&그룹이나 STX그룹의 잔상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본격적인 위기가 닥치기 전에 포스코의 선장을 맡은 권오준 회장은 다시 키를 ‘철강’으로 돌렸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열사나 사업부문을 매각해 어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은 제시하지 않았으나, 갖고 있는 것보다 파는 게 더 이익이 된다면 팔겠다는 방향성만은 확실했다.
포스코 사업다각화의 상징과도 같은 대우인터내셔널 역시 매각 검토 대상에서 예외는 아님을 분명히 했다.
권 회장은 이날 경영전략 발표회에서 “대우인터내셔널 인수해 가서 우리보다 경영을 잘 하고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줄 수 있는 원매자가 나온다면 대승적인 차원에서 매각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 매각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잠재적인 원매자에게 매각에 절실하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한 일종의 협상 전략으로 풀이된다. 파는 쪽이 다급해지면 사는 쪽은 제 값을 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이후 미얀마 앞바다에서 가스가 쏟아져 나옵니다. 흑자 규모가 올해 2000억원, 내년엔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캐시카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한 권 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이 회사가 이익을 잘 내니 안 팔겠다’는 의미 보다는 잠재적 원매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성 멘트’임과 동시에 헐값에는 안 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는 ‘협상용 멘트’로 받아들여진다.
철강 불황기 돌파를 위한 권 회장의 이번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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