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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선생님, 한번 뻗은 손을 끝까지 잡고 계셨다"


입력 2014.04.20 09:49 수정 2014.04.24 11:37        안산 = 데일리안 조성완 기자

단원고 학생들, 세월호 침몰 사망한 교사 남윤철 씨 회고

"가출하고 사고 친 학생들 끝까지 어루만진 자상한 선생님"

전남 진도에서 발생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진 안산 단원고등학교 고 남윤철 교사의 빈소가 안산 제일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18일 오전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중학교 1학년 때 멋모르고 가출을 했다. 그런데 남윤철 선생님은 손을 안 놓더라. 한번 뻗은 손을 끝까지 쥐고 계셨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고인이 된 단원고 교사 고(故) 남윤철 씨(35)를 떠올리던 엄모 군(20)은 끝내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18일 엄 군과 사모 군(20) 등은 경기도 안산 제일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이들은 고인의 첫 발령지인 대부중고등학교 출신이며, 그의 첫 제자이기도 하다.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한 후 고인의 이름을 찾던 이들은 끝내 비보를 접하게 됐다.

제자들의 기억 속에 고인은 항상 밝은 모습이었고, 동료선생님들보다 제자들의 입장에 서 주는 자상한 선생님이었다. 특히 자신이 맡은 제자 한명 한명을 아끼고, 끝까지 책임지는 선생님이었다.

엄 군은 ‘데일리안’과의 대화에서 “제가 예전에 사고를 좀 많이 쳤다. 그걸 다 받아들이고, 다 제대로 잡아주고...”라고 말한 뒤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잠시 숨을 가다듬은 그는 떨리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중학교 1학년 때 멋모르고 집을 나간 적이 있다. 그런데 남 선생님은 내 손을 안 놓더라. 한번 뻗은 손을 끝까지 쥐고 계셨다”며 “(남 선생님의 사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욱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는 왜 나한테 이렇게 관심을 갖는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고마운 분이다. 진작 찾아뵀어야 했는데...”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엄 군과 함께 빈소를 찾은 사 군은 “우리가 (남 선생님의) 첫 제자다. 그래서 더 잘 해주신 것 같다”며 “처음이라서 그런지 의욕도 더 많으셨고, 학생 수도 적어서 한명 한명에게 더 애착을 많이 가지셨다”고 고인을 떠올렸다.

그는 “이제는 다들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어제 뉴스를 보면서 (남 선생님의 행방을) 계속 찾았다. 근데 이렇게 되셨다는 소리를 듣고 다 모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단원고 학생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려했다. 대부분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거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요”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고인에 대한 질문에는 다들 한결같이 “참 밝고 항상 웃으시는 선생님”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은 취재진이 다가가자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남 선생님은 평소에 어떤 분이셨나”라는 질문에는 “이런 질문에는 꼭 말해야겠다. 이건 말해야 돼”라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평소에 학생들과 엄청 친하게 지내신 분이다. 항상 밝았고 웃는 모습이었다. 장난도 많이 치고...”라고 말한 뒤 목이 메는 듯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제자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실제 사고 현장에서도 고인은 자신보다 제자들을 먼저 챙겼다. 침몰 직전의 세월호에서 마지막까지 선내에 남아 학생들을 구하느라 본인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 한 것이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고인은 선체가 급히 기울어진 지난 16일 오전 10시께 선실 비상구 근처에 있었지만, 본인보다는 학생들의 탈출을 우선시했다.

그는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빨리 빠져나가라”고 말해면서 대피를 도왔다. 그 덕분에 고인의 주변에 있던 6반 학생들은 많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본인은 끝내 17일 오전 9시 20분 여객선 주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조성완 기자 (csw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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