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유괴 살인의 중심…권력자 대한 냉소?
<김헌식의 문화 꼬기>'신의 선물' 일상적 공포 아니었나?
'우연의 법칙'에서 슈테판 클라인(Stefan Klein)은 우리가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인과 관계를 인간이 파악하지 못할 뿐 다 나름의 원인을 갖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가이다. '우연을 길들이다'(The taming of chance)를 통해 이언 해킹(Ian Hacking)은 현상과 사건은 과학적 인과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비인과적 즉 비결정론적으로 움직인다. 그는 통계나 확률은 사건이 일어난 사후에 가능하다고 함다.
사람들은 우연의 일치를 좋아한다. 일치는 무엇인가 법칙 같은 것을 말한다. 무언가가 우연들을 움직이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연의 일치는 어떤 패턴이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우연히 일어난 현상이 인과 법칙에 따른다면 다른 우연의 예측과 대응이 가능해진다. 패턴을 읽거나 유추하는 경향은 인간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물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면 아전인수식으로 패턴을 확증한다.
FBI분석관들의 패턴 오류는 인간의 패턴 습성의 극단화된 형태이다. 수사관들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패턴을 찾고 어떤 인과관계에 연결시킨다. 그 인과관계는 범인의 추적과 체포에 모아진다.
때로는 자신의 패턴 집착에 따라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기도 한다. 물론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패턴에 집착하는 사람이 옳은 것으로, 패턴을 무시하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틀린 것으로 묘사된다. 이를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추리 스릴러라는 장르는 인과 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자기중심성이 강한 작품은 자신을 위협하는 원인을 추적해간다. 인과 관계에 대한 탐색은 결국 그것을 예측하고 방어하려는 것이다.
SBS 드라마 '신의 선물'은 딸의 죽음을 낳는 원인들을 제거하려는 엄마의 고군분투를 담고 있는데 그녀는 인과관계와 패턴을 밝히려고 집중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미친 사람 취급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녀가 옳았음이 증명되었으면 한다. 딸을 지키려는 엄마는 모든 단서와 흔적들의 연계고리에 집중하기 때문에 남편에게서 패턴 집착증 환자로 취급받기도 한다. 사건의 발생을 알고 있는 그녀는 패턴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볼 때, 자녀가 귀해진 사회에서 아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수록 아동 범죄가 증가할 수 있고, 이러한 잠재성을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감을 더한다.
특히, 딸을 둔 부모일수록 이런 공포감은 단지 영화나 드라마 속에만 한정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신의 선물'은 처음에 자기 주변의 사건은 결국 가장 가까운 자신이나 자신 주변에서 벌어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우연히 일어난 딸 아이의 유괴와 죽음이라고 생각되었던 사건이 결국 어떤 인과 관계를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보통 시청자들이 겪는 일상의 불안 의식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지는 못하다. 인과관계에 따라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에 대한 불안 의식이 크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인과 관계로 풀어 결론에 이르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자신의 원인 제공과는 관계없이 사건에 휘말린다.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남치와 유괴 그리고 죽음을 야기한다. 그런 점이 더 두렵고 공포스럽다. 결국 대통령이 정치적 쇼를 위한 희생양으로 자신의 딸을 죽인다는 설정은 일상적이지 않다.
결국, 이 드라마는 일상의 시민들이 겪는 두려움과 공포를 다루는 듯 하지만, 결국 유괴의 패턴을 정치적 음모와 정치 집단이나 권력자에 대한 냉소주의에 연결 시킨다. 정치인이나 권력을 비판하거나 이에 대한 모순을 지적하면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가 내려지는 관성이 여전히 작용한 셈이다. 대통령은 다른 드라마에서도 등장한다.
드라마 '쓰리데이즈'는 추리 액션물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암살 음모는 인과 관계가 확실해야 한다. 우연히 대통령이 혹은 우연히 누군가 살해한다면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인과관계는 특정 직업군에게만 해당된다. 공포감이나 불안보다는 사건의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험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추리를 통해 범인의 행동과 흔적, 의도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재미가 '신의 선물'과 같은 장르와 공통적이다. 하지만, '신의 선물'과 '쓰리데이즈'는 이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일상의 사건인가 특정 공간과 직업군에 한정되는 것인가에 따라 차이가 난다. 사실 보통 생활인들과 대통령의 암살은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
드라마 '신의 선물'은 사회와 정치와 유괴 살해를 연결시켜내면서 일상적인 구조의 사소한 한계를 돌파해나간다. 사회적 의식과 비판적 주제의식은 담았는지 모르지만 시민들이 겪는 위험사회에 대한 불안은 탈색시켜 버렸다. 정치인들의 음모 때문에 유괴가 일어난다면 쉬운 문제일 수 있다. 그런 몇몇 권력자들만 제거하면 해결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극화와 불균형성, 갈등 불안의 요소가 증폭되는 사회는 그렇게 쉽게 제어될 수 없고, 이는 앞으로 더욱 불안과 공포에 휘말리게 할 수밖에 없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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