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검은 유혹…희망퇴직 꼼수 뒤 '데스노트'
희망퇴직 받는다면서 뒤에선 직원 평가
점포수 줄이더라도 인력감축 없다는 사측 주장 설득력 떨어져
경기 침체로 인한 금융권의 구조조정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반토막 실적으로 올 한해 금융권의 한파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희망퇴직, 명예퇴직의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금융회사로서는 긴축경영의 일환으로 희망퇴직 카드를 꺼내들며 직원들의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금융권 종사자들에게 불투명 미래에 대한 고용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사측으로서는 자발적인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지만 경영진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전가한다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 일부 금융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하면서 뒤에선 퇴출자 명단을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금융회사 구조조정 칼날을 경영진이 아닌 죄 없는 노동자가 뒤짚어쓰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금리·저성장을 이유로 진행되고 있는 금융권 구조조정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한국씨티은행은 기존 점포 190개 가운데 30%에 달하는 56개를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씨티은행 측은 점포수를 줄이더라도 인력감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씨티은행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씨티은행 임원(본부장급 이상)은 이미 내보낼 사람의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다. 인력감축은 없다던 사측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얘기다.
'BM평가 기초자료' 내부 문서에는 '통과 그룹(Pass Group)'과 '불확실한 그룹(Doubtful Group)'이 위아래로 나뉘어 있다. 또 각 그룹에는 충성도(Loyalty) 평가 항목이 있다. 이 문건은 본부장급 임원이 이메일을 보내는 과정에서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퇴직 대상자 수가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지 않은 만큼 데스노트에 얼마나 많은 직원 수가 기록될지 알수는 없어 직원들 사이에 고용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통과 그룹은 그대로 가도 괜찮은 사람, 불확실한 그룹은 해고해야 할 사람"이라며 "점포수를 줄이더라도 인력감축은 없다는 사측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는 증거"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평가 항목에는 충성도가 있는 것도 어이없는 부분"이라며 "상부 입맛에 맞지 않은 직원은 자르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금융권 전반에서 저금리·저성장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직원을 내보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화생명 노동조합도 사측이 부서장과 본부장을 압박해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회사가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다"며 "또 명분도 없는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각 부서장과 본부장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증권도 지난 8일 지점축소와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삼성증권 전체 지점의 25%에 달하는 25개 지점을 폐쇄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에서 불고 있는 구조조정 바람이 경영진이 아닌 말단 하부조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 없이 인력감축만 강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금융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점 폐쇄'는 금융회사의 몸집 줄이기가 아닌 인력 줄이기"라며 "지점 폐쇄는 곧바로 인력감축으로 이어진다. 구조조정을 인력감축으로 인식하는 건 우리나라밖에 없는 거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은 다른 업계와 달리 간부와 직원의 임금 차가 크다"며 "인력감축보다는 임금조정을 통해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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