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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뮤지션은 결국 악동이 아니었다


입력 2014.04.08 10:36 수정 2014.04.08 10:39        김헌식 문화평론가 (codessss@hanmail.net)

<김헌식의 문화 꼬기>대안을 바랐지만 기성 음악계의 상품으로 전락

악동뮤지션이 첫 앨범을 발표했다.ⓒYG

악동(樂童, Akdong Musician)은 악동이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본래 악동(惡童)에 대한 이미지는 대중문화에서 이희재의 만화 ‘골목대장 악동이’이었다. 악동이는 장난과 말썽을 잘 부리는 아이를 말한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충실하기 때문에 그것이 어른의 눈에는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로만 보인다. 하지만 그 속마음으로 들어가면 순수한 마음을 온전히 지키고 있는 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악동이에 대해서 독자들을 마음을 줄 수밖에 없다.

악동(惡童)을 악동(樂童)으로 전치시킨 악동 뮤지션이 고대하던 앨범을 발표했고, 예상대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주류 음악에서 볼 수 없는 점들을 다시금 재인식 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발랄하고 경쾌한 음악 속에 10대의 색다른 감수성이 순수한 악동(惡童)같기도 하다. 분명 획일적인 한국음악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들은 어느새 대세가 되었고 아무도 부정을 하지 못한다.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일종의 문화운동 차원에서 지지기반이 공고하게 다져질 것이겠다.

몇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악동뮤지션의 이찬혁(18), 이수현(15)은 홈스쿨링으로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홈스쿨링 때문에 그들이 획일적인 음악이 아니라 색다른 창조적인 음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입시교육의 폐해를 여실히 겪고 있는 한국 시민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더구나 그들이 몽골에서 성장했다는 점은 확연한 각인 효과를 낳았다.

아무리 부각해도 그들은 몽골에 살고 있지 않으며, 한국에 있다. 더구나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만약 그들이 음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존재적 기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홈스쿨링을 하는 이들이 모두 음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음악을 하는 마당에 나왔으니 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가정의 사적인 스토리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극찬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문제는 음악적 다양성과 음악적 활동의 대안의 모색이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던 것일까. 신상의 논리는 수용되었다. 그것은 주류를 향한 욕망을 그대로 투영한 결과였다. 그들은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며 자신의 음악을 알린 것이 아니라 대형 방송국의 오디션에 나왔다. 학교 교육을 거리를 두었다는 점부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물론, 그 방송국 오디션은 대형 기획사의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10대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방송국을 통해 우리나라 2대 기획사에 꼽히는 소속사 가수가 되었다. 어느새 한국음악의 지배자가 되었다. 더구나 그들이 내세우는 곡들은 사랑노래들이다. ‘give love’, ‘200%’의 노래들이 이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결국 그들의 모든 행보들은 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해졌다. ‘얼음들’이 그나마 그들의 정체성을 희미하게 말해준다.

무엇보다 정작 그들은 악동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외모를 볼 때 악동(樂童)이 아니라 악동(惡童)을 상품화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말 기대했던 것은 인기의 악동(樂童)이 음악의 악동(惡童)이었다면 잘못된 것일까. 즉, 악동은 말썽꾸러기로 기존의 어린들이 만들어놓은 질서를 헤집어 놓는 이들이다.

그들은 이를 통해서 잃어버렸거나 무시하고 있는 가치들을 새삼 드러내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대안교육이며 홈스쿨링의 가치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악동 뮤지션의 행보는 이전의 다른 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독특함을 내세워 먹힐 수 있는 상품성을 강화할 뿐이겠다. 대안적 교육 가치와 방법들이 결국 사교육을 강화시키고 서민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던 과거의 사례들이 연상된다. 결국 주류에 편입되기 위한 상품적 장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악동 뮤지션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차라리 악동뮤지션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시간을 두고 점차 조금씩 팬들을 확보해 나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것이 대중음악계의 1세대 악동 김광석이 시행한 방법이었고, 오히려 악동 뮤지션은 김광석과 같은 행보를 보였어야 악동에 부합할 듯싶다. 악동 뮤지션의 공간적 영토는 허공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기존의 기획사의 케이 팝과 같다.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일까.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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