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태도 바꾼 북, 키리졸브 대신 진짜 노린 것은?
'아무 조건 없이' 느닺없는 통큰 양보에 의심 눈초리 어쩔 수 없어
7년 만에 고위급 접촉을 성사시킨 남북이 2차례에 걸친 논의 끝에 14일 이산가족상봉 행사 등을 포함한 공식 합의문을 도출, 예정대로 20~25일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열리게 됐지만 나머지 합의 조항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남겼다.
이날 남과 북이 합의한 내용은 ‘남북 이산가족상봉을 예정대로 진행한다’, ‘남과 북은 상호이해와 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는다’, ‘남북 상호 관심사 문제는 계속 협의해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상호 편리한 날짜에 고위급 접촉을 갖는다’이다.
앞서 12일 진행된 1차 접촉에서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빌미로 한미군사훈련 중지를 주장했던 북한은 이날 2차 접촉에서 '통큰 양보를 했다'고 말했다는 뒷얘기도 나왔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줄곧 ‘한반도 프로세스’를 비방했던 북한이 아무런 ‘조건 없이’ 정부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석연치 않은 느낌마저 든다.
이에 대해 대북전문가들 상당수는 북한이 이번 회담을 통해 정작 노렸던 것은 ‘한미군사훈련 중단’보다는 우리 언론을 견제하려는 전략이 주요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14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북한은 처음부터 이산가족상봉을 파기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자신들의 체제를 비난하는 한국 언론에 대한 제재를 가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고 교수는 이어 “현재 북한은 중국 등 대외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만약 이산가족상봉까지 파기한다면 외교적 명문이 남지 않는다”며 “다만, 북한도 통상적으로 주장했던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할 필요는 있었기 때문에 교묘하게 날짜를 겹쳐 주장을 극대화한 측면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하지만 북한 역시 정부가 원칙적으로 한미군사훈련이 중단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정작 북한이 이번 접촉에서 궁극적으로 공약한 것은 한국의 언론이다. 2번째 합의 조항에 그 점이 명시돼 있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가 지적한 2번째 조항 ‘남과 북은 상호이해와 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북한이 그동안 수차례 ‘최고 존엄을 비방하지 말라’며 우리 언론을 비난해 온 점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정부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언론을 통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지만 이 조항을 놓고 본다면 북한이 언제든 꼬투리를 잡을 빌미가 내재돼 있다”며 “아마 북한은 당분간 국지 도발을 할 가능성은 적지만 우리 언론의 태도를 예의 주시하며 상황에 따라 이를 문제시 삼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고 교수는 “그만큼 북한이 현재 우리 언론의 지적에 상당한 압박감을 갖고 있다”며 “이를 통제하기 위해 이 조항을 관철시킴으로써 언제든 전략적인 카드로 들고 나올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도 “남북이 이산가족상봉에는 합의했지만 나머지 조항들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특히, 북한은 서로 간의 비방을 하지 않는다는 명목을 빌미로 우리 언론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장 선임연구원은 “가령, 대북단체 중심의 대북비난 방송이나 삐라살포의 경우 북한이 반발할 시 정부가 어느 정도 절충안을 제시할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언론은 다르다. 북한은 이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 언론이 자신들을 비난한다고 지적하면서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도 적잖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북한은 이번 협상을 통해 우리 언론을 견제하려는 전략을 처음부터 견지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자칫 이번 접촉이 우리가 다 얻은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당연히 받아야 할 것만 받은 것이다. 오히려 북한은 대외적으로는 남북화해 조성 명분을 표방하면서도 언제든 우리 언론을 빌미로 태도를 바꿀지 정부가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번 접촉에 상당한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측 대표단의 수석대표인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우리 측이) 박 대통령이 남북과의 신뢰를 중요시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더니 그 쪽에서도 ‘그 말을 믿겠다’ ‘통큰 양보를 하겠으니 앞으로 잘해라’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김 1차장은 합의문 도출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남과 북은 이번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사봉 문제를 포함해 남북간 주요 관심 사항에 대해 격의없이 의견을 교환했다”면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취지와 내용을 충분하게 설명하면서 이산가족상봉이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동안 북한이 보여준 일련의 태도를 볼 때 과연 이번 합의대로 순순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인정, 평화적인 제스처를 이어가고 합의를 실행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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