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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영업 금지하면 개인정보 보호되나


입력 2014.01.29 10:59 수정 2014.01.29 11:07        김지영 기자

<기자수첩>정보유출 불똥 전화상담원 대량 실직 사태는 누구 책임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7일 오전 종로구 KB국민카드 본사 앞에서 개인정보유출 사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 소송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신용카드 해지,불매 선언 절단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카드사 DCDS(채무면제유예상품)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는 김모 씨(28·남)는 지난 27일 회사로부터 어이없는 통보를 받았다. 당분간 출근은 하되 영업은 하지 말라는 것. 김 씨의 월 기본급은 세후 100만원 남짓. 나머지 수입을 영업수당에 의존하는 김씨에게 영업을 말라는 것은 돈을 벌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막은 이렇다. 최근 발생한 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은 27일부터 SMS, 전화, 이메일을 통한 대출영업과 카드슈랑스(카드사·보험사 연계 보험상품)를 전면 금지했다. 불법 정보 활용 가능성이 있는 금융거래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어긴 금융사는 영업정지 등의 제제를 받는다.

하지만 전화영업 금지 대상에 DCDS는 포함되지 않는다. 불똥이 튈까 우려한 김 씨의 회사가 알아서 꼬리를 내린 것이다. 실제 금융당국에 김 씨의 회사에 대한 소비자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전화영업을 금지한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전화가 오느냐는 것. 소비자가 영업금지 대상을 일일이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김 씨를 비롯해 이 회사의 전화상담원 130여명은 일시에 월급 100만원짜리 신세가 됐다. 그나마 이달 실적이 있기에 다음달 급여는 크게 줄지 않지만, 다음달 영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경우에는 뒤를 장담하기 어렵다. 정책의 나비효과랄까, 금융당국의 생각없는 조치에 애꿎은 영업사원들만 죽어나게 생겼다.

금융사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과 유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아마도 개인정보 관리시스템의 도입과 시작을 함께했을 것이다. 다만 문제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금융서비스 제공 조건에 개인정보 활용 동의가 강제되고, 금융사에 수집된 정보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이곳저곳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사태를 십수년간 방치한 정부와 금융당국에 있다. 진작 개인정보 수집 요건을 강화하고, 유출시 처벌을 강화했다면 개인정보 유출이 지금처럼 밥 먹듯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주민등록번호의 대체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십수년째 달라진 것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금융당국이 아직도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의 대책으로 전화영업 금지와 주민등록번호 수집 금지를 내놨다. 역시나 각계에서 우려와 반발이 쏟아졌다. 부작용이 발생할 게 뻔한 정책들만 내놓으니 금융당국의 인식과 진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비대면 영업 금지로 속출하는 영업사원 실업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금지하면 무엇으로 개인정보를 식별할 것인지, 또 이미 발생한 부작용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답이 없다. 보여주기에만 급급해 만든 정책으로 무엇을 해결한다는 것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이번 대책들이 개인정보 보호와 유출 방지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또 합법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활용해 자사의 고객들만 상대로 영업을 하는 선량한 기업들도 피해를 보게 생겼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금융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 정보 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는 실언으로 대통령으로부터 옐로카드를 받았다. 앞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좋은 관치(官治)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이번에 금융당국이 내놓은 대책들 역시 두 경제수장의 발언만큼이나 현실과 동떨어졌다. 현 부총리의 말 한마디가 옐로카드감이라면 실제로 실업자를 양산하고 금융사의 업무를 마비시킨 금융당국 수장들은 레드카드를 받아야 할 수준이 아닌가 싶다.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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