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식코'의 비극?" 의료 민영화 괴담 확산
4차 투자활성화대책 중 '자법인 설립 허용 및 부대사업 확대' 논란
"돈 없으면 죽으란 말이요?"
마이클 무어 감독의 2007년 작품인 '식코(Sicko)' 포스터의 광고 카피다.
최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SNS)를 타고 의료 민영화 괴담이 확산되면서 한국판 식코의 등장이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사회의 의료 민영화에 따른 폐단과 현실을 밝힌 다큐멘터리 영화다. 미국 의료 보험 조직인 건강관리기구(HMO) 부조리적 폐해의 충격적인 이면을 폭로했다.
특히 돈 없고 병력 있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 계층을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고 국가적인 수준의 복지가 이뤄져야 할 의료서비스에 이윤추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때 어떤 사단을 낳을 수 있는지 극명히 보여준다.
중지 봉합 수술 6만달러, 약지 봉합 수술 1만2000달러나 되는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채 날마다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다.
이 영화의 파급력은 컸다. 개봉된 후 일주일 동안 2만5000여명의 미국인들이 비슷한 유형의 의료보험 괴담을 쏟아내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의 경우 사회 보장제도를 보장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문제다. 물론 미국은 공공의료가 잘 발달됐지만 민영보험과 국영보험의 울타리 안에 속하지 못한 계층이 의료복지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의료비 자체가 워낙 비싼 탓이다.
미국의 의료비가 비싼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심지어 해외공관에서 일하는 관계자들도 현지 의료비가 비싼 탓에 한국으로 들어와 치료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식코 개봉이 5년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 한국판 식코의 비극을 염두한 '의료 민영화' 괴담이 고개를 내민 것은 지난 13일 정부가 '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하면서다.
19일 인터넷과 트위트를 살펴보면 "4시간 병원비 4700만원, 남의 일이 아닙니다", "병원의 영리 자회사는 의료 민영화를 위한 꼼수, 1%를 위한 정부 1%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99%의 부를 뺏어가는 시스템이 민영화다", "의료 민영화하면 서민들 다 죽습니다", "의료 민영화란 아프니? 돈없니? 걍 죽어" 등 실시간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번 정부의 4차 투자활성화대책은 과도한 규제로 인해 투자의 어려움을 느끼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풀어주거나 관련 입법조치가 필요한 과제를 국회로 던져 법제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번 대책의 주요내용은 △의료법인 사법인 설립허용 및 부대사업 확대 △의료법인간 합병허용 △법인약국 설립 허용 등이다.
특히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 허용과 부대사업 확대가 '의료 민영화'의 키워드로 부각되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행 의료법인은 자회사를 만들 수 없다. 우리나라 병원 자회사 설립은 대학병원만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 공익사업에 이익의 80%를 재투자하는 병원도 대학병원처럼 자회사로 가지치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목적의 의료사업 이외에도 의료기기 임대, 의약품 개발, 건강보조식품 개발·판매로 부대사업의 범위가 확대되며 다양화된다.
이밖에 여행숙박업계, 재무투자자 등과 공동출자해 해외환자 유치 전문기업을 만들거나 해외현지병원, 신약개발업체도 만들 수 있게 된다.
결국 경기침체로 경영난에 봉착한 대형병원에 의료수익과 더불어 알파의 돈벌이를 할 수 있게끔 규제를 풀게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자법인 설립허용안이 발표되자 일각에서는 의료수가 인상안의 대체제가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같은 여론이 의료민영화라는 키워드와 맞물리면서 영화 '식코'의 사례를 들어 '맹장수술 900만원'과 같은 괴담이 떠돌았다.
이에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은 "건강보험 수가인상을 대체해 부대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수가인상은 자법인 설립·허용과 무관하게 검토해 갈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보건의료단체의 입장은 달랐다. 보건의료 단체는 "사실상 영리병원 도입 전 단계"라며 "자회사를 통한 과도한 영리사업은 의료상업화를 가속시킨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애시당초 의료법상 의료기관은 관련 정부기관, 의료인, 의료법인으로 대표되는 비영리법인만이 설립할 수 있지만 비영리법인을 모체로 하는 의료기간이 영리목적의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의료법이 정한 취지 자체가 무산된다는 것. 이는 영리자회사를 손에 쥐고 있는 영리법인이 의료기관에 간섭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게 되는 셈이라는 판단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국민건강보험을 형태만 남기고 실질적인 권한은 없게 하는 수순까지 다다르게 된다는 우려다.
결국 비영리법인에서 영리병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여지가 걱정이지만 현행 국가 운영을 통한 의료보험 시스템이 가동되기 때문에 영리병원 스스로 의료수가를 맘대로 조정할 여지가 원천봉쇄된다. 우리나라 의료수가는 병원 스스로가 자체지정할 수 없고 결정권이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 정부는 영리법인 자회사의 설립조건을 △경제자유구역 안에 둘 것 △외국인 투자비율이 50%를 넘을 것 △그외 대통령으로 정한 법률을 만족할 것 등의 조건을 내세우며 빗장을 엄격히 걸어 잠그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판 식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의료 민영화'와 '의료보험 민영화', '민간의료보험 확대' 등과 관련한 오해가 실타래처럼 얽히며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까닭에서다.
우리나라는 당연지정제와 행위별수가제 등의 의료보험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전 국민은 의료보험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모든 병원은 당연히 건강보험에 보장받는 환자를 거부할 수 없다. 또한 각 개인이 어느 병원을 가던 각 병원에서는 진료행위의 건건마다 보험혜택을 누리게 해준다.
이창호 보험연구원 박사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시스템은 의료서비스에 대해 나라가 보험료를 거둬 운영하고 있고 의료공급자에 대해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 민영화 문제가 극명하게 나타날 수 없다"며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에 가격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만일, 의료보험 민영화가 현실이 되면 현재 정부 차원에서 강제시행하고 있는 건강보험 시스템을 민간에 맡기게 되는 꼴이다. 이는 당연지정제와 행위별수가제의 폐지를 뜻한다. 정부의 진료비에 대한 개입도 없어지며 건강보험 지정병원이 되는 것도 거부하는 병원들도 늘어난다.
건강보험 지정병원이 될 필요가 없어진 일선 병원, 의원은 민간보험을 등에 업고 활개를 친다. 민간보험은 돈을 더 많이 내는 고객에게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를 철저히 지키며 더 많은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는 부유층을 주 고객층으로 삼는다.
돈이 많은 고객들은 점차 '더 내고 덜 혜택받는' 국민건강보험을 탈퇴하고 민간의료보험으로 갈아타게 된다. 이럴 수록 국가에서 보장하고 지원해주던 질병군이 자꾸 축소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의료 민영화를 통해 잘 사는 사람들은 더 질높은 서비스를 받는 반면 일반 서민들은 비싼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현실화될 경우 의료수가가 오른다고 해서 보험료가 올라갈 가능성 여지는 있지만 당국의 규제가 까다롭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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