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열흘째 '불통' 철도파업의 숨겨진 꼼수는
"공기업 개혁 막는 기득권 지키기가 주된 이유"
철도노조 파업의 숨겨진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철도노조의 파업이 17일 역대 최장 기간인 열흘째로 접어들면서 운행률 감소는 물론 인명사고까지 발생하는 등 ‘수송대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국열차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노조측은 파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대선 1주년인 오는 19일에는 전국의 철도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국대회도 계획하고 있다. ‘민영화 반대’라는 구호를 내세워 여론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는 판단에서다. 파업을 장기화할 수 있는 동력도 여기에서 나왔다.
대통령도 총리도 "민영화 아니다"고 하는데...'철도 괴담'까지 나돌아
정부는 철도노조의 파업 명분인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과 철도 민영화’에 대해 “관련이 없다”고 거듭 말했다. 특정 사안을 두고 대통령과 총리, 장관까지 나서서 ‘그게 아니다’고 밝히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에서 그동안 누차 민영화를 안한다고 발표했는데도 철도노조가 민영화하지 말라고 파업하는 것은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국민 경제에 피해를 주는 전혀 명분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다시 한 번 철도 민영화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노조와 국민에게 말씀드린다”며 “명분 없는 파업이 계속될 경우 국가경제에 지대한 피해를 주고 국민의 지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수서발 KTX 자회사는 민영화가 아니라 경쟁 체제를 통해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철도 파업이 국민에 불편을 끼치고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해서 노조의 불합리한 요구를 수용하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여전히 ‘철도 민영화’ 구호를 거두지 않고 있다. “정부의 말은 ‘대운하 아니다, 4대강이다’와 같다.(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며 논리 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 사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철도 민영화 반대”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철도민영화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20만원을 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평생 철도 한번 못타보고 죽는다”는 등 ‘민영화 괴담’까지 나돌고 있다.
"'민영화'에 가려진 기득권지키기, 공기업개혁 칼날 피하겠다는 것"
정부도 코레일도 ‘민영화가 아니다’고 하는데 노조가 파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계에 정통한 한 인사는 “철도노조가 공기업 개혁을 앞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파업의 이면에는 코레일의 막대한 적자와 부채를 해결 방안으로 제시된 공기업 개혁안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숨어있다는 것. 공기업 개혁의 주요 내용은 조직개편 및 구조조정,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설정 등으로 노조 입장에선 머리띠를 두를 사안이다.
이에 공공기관 가운데 대표적인 강성노조인 철도노조가 ‘총대’를 메고 공기업 개혁의 칼날에 맞서는 형세라고 진단했다. “다른 공공기관 노조의 파업 동참과 양대 노조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미 철도노조는 민주노총과 연대투쟁 전선을 구축하고 전국규모의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17일 오전엔 서울 여의도에서 철도노조원을 비롯해 민주노총 산하의 공무원노조, 금속노조 등 2500여명이 모여 결의대회를 열었고, 밤에는 서울역에서 민영화 반대 야간 촛불 문화제도 열었다.
"민영화 반대 파업? 철밥통 지키기 투쟁!"
문제의 핵심은 코레일이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으며 이로 인한 공기업 개혁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코레일은 17조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는데다 부채비율이 430%에 달한다. ‘민영화 반대’목소리에 가려져 있지만, 노조는 이번에 ‘월급을 8% 올려 달라’는 카드도 함께 내밀었다.
임직원 평균연봉이 5800만원대에 이르고, 방만한 경영으로 수술대에 올라 있지만, 정부가 들이댄 ‘메스’인 공기업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2.8%를 반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개혁의 칼날과 경쟁구도를 피하면서도 “철밥통은 챙긴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에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철도노조는 그동안 쌓인 빚더미 위에서 고임금과 고용안정이라는 무임승차를 즐겼던 것부터 반성해야 한다”며 “철도노조가 민영화 반대라며 파업에 나선 것은 결국 공공성을 담보로 한 철밥통 지키기 투쟁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바른사회는 이어 “적자 기업이라면, 연봉삭감이나 조직개편과 같은 자구노력을 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이젠 명분 없는 파업을 중단하고 현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 발 동동, 산업계 2차피해 우려…정부 '노조간부 체포영장' 발부
그 사이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평시 대비 각각 56%, 61.8%로 운행률이 떨어진 데 이어 17일부터 KTX 역시 18% 감축 운행에 들어가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또 시멘트 제조에 필요한 연료인 유연탄 운송이 차질을 빚는 등 산업 현장의 2차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앞서 15일엔 코레일이 운영하는 서울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에서 철도 파업으로 대체인력이 투입된 열차에서 하차하던 승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17일부터 88%까지 감축되는 KTX 운행을 23일 평시 대비 56.9%까지 줄일 계획이다. 장기파업에 따른 대체인력 피로도 누적과 사고 위험성을 낮추기 위한 방안이다.
동시에 정부는 이번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처키로 했다. 검찰은 16일 파업을 주도한 노조 간부 10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모두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이와 함께 경찰은 17일 오전 서울 용산역 인근 철도노조 본부와 서울 사무소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하고, 사무실에 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내부 보고서 등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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