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국회찾은 JP "박정희 지도 모습 선한데..."
운정회 창립총회 "경제력없이 민주주의와 자유 행할 수 없어"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국무총리)는 10일 자신의 호(號)를 딴 ‘운정회’ 창립총회에 참석, “지금도 눈감으면 박정희 대통령께서 동분서주하면서 나라발전을 위해 지도하신 모습이 선하다”고 밝혔다.
김 전 총재는 이날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운정회 창립총회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기 위해선 이를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배가 고픈데 무슨 민주주의와 자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전 총재는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대통령은 아주 정확한 정치노선을 정립했다”면서 “맹자께서 가르치셨던 ‘경제력 없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행할 수 없다’고 했다”며 고(故)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조업을 통한 수출주도형 산업화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끈 점을 피력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주도한 한일 국교정상화 보상금 및 광부-간호사의 독일파견 등에 대한 사례를 거론하며 “그런데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아 (내가) 맹렬히 비난했다”면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향유하고 인간답고 여유롭게 살 경지를 목표로 하되, 그를 뒷받침할 경제력을 우선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총재는 “박 대통령은 자원이 없는 가난한 우리나라가 살아갈 방법은 ‘제품을 해외에 팔아 거기서 돈을 벌어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 밖에 없다’고 하셨다”며 “박 대통령은 매월 전국의 경제인을 모아놓고,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배워오라’며 18년 동안 한 번도 빼 놓지 않고 수출산업을 지도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제2차 경제개발 계획이 끝난 1964년 12월 5일 ‘수출 1억불’이라는 성과에 눈물이 글썽글썽하셨다”며 “2500만불을 빚지고 있는 그런 나라에서 시작해 불과 1년 만에 수출 1억불을 달성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그런 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박 대통령 같은)지도자도 계시지만, 5천만 국민들이 ‘이제 잘살아 보자’,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전부 일어나 나라 발전과 경제건설을 위해서 정성을 쏟았던 결과다”라고 말했다.
“이제 조용히 누울 일만 남았다”
김 전 총재는 세월을 돌이키고 보니 후회가 남고 이제 여생을 마무리 할 단계에 와 있다고 언급해 주변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저도 이제 이런 나이가 돼서 돌이켜 보니, ‘뭐 한 것 없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왜 못 했느냐’는 후회가 막급하다”며 “누구나 늙으면 병이 생기고 병이 생기면 죽는 경로를 밟는데, 저도 ‘생노병(生老病)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조용히 눕는 일만 남았다”며 “반세기 국가발전의 정우(政友) 여러분께 보답을 못하고 가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도 했다.
앞서 5년 만에 국회를 찾은 그는 10시 55분께 흰색 밴을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김 전 총재가 밴에서 내리자 자민련 출신의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 등 미리 대기하고 있던 10여명이 김 전 총재를 맞이했다. 몸이 불편한 김 전 총재는 새누리당 충청권 맹주인 이완구 의원이 끄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김 전 총재는 행사장으로 이동하기 앞서 국회 헌정기념관 내 ‘최대선 의원’전시물을 잠시 둘러본 뒤 곧바로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김 전 총재가 행사장으로 들어서자 지지자들은 ‘김종필’을 연호하기도 했다.
그는 5년만에 국회를 방문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언급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이동했다. 그는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행사가 끝난 뒤 200여명의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는 등 감사인사를 표했다. 몸이 불편한 이유로 오른손이 자유롭지 못한 그는 왼손으로 악수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강창희 국회의장, 이한동 전 총리를 비롯, 정우택 서청원 정몽준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과 정대철 민주당 고문, 정운찬 전 총리 등 자민련 출신인사와 충청권 정치인 300여명이 회의장을 빼곡히 메웠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