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한다고 찍힌거나 다름없어" 자금조달 시장 막막
금융당국 부실 가능성 우려 4~5곳 관리채무계열 선정
단계별 관리의도와 달리 기업 자금 조달 사정 '부익부 빈익빈' 우려
"공부 못하는 놈 찍히면 더 몰리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얼어붙은 기업들의 자금조달의 '부익부 빈익빈((富益富貧益貧)' 현상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일명 잘나가는 기업의 곳간은 넘쳐나는데 평판 리스크를 안고 있는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허덕이는 실정이다.
더욱 웅진부터 STX, 동양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회사채, 기업어음(CP) 시장이 시름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부실 가능성이 큰 기업에 대해 관리채무계열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직접금융 시장의 한파는 더욱 거셀 것으로 보인다.
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위는 은행에서 일정자금 이상 빌린 대기업그룹 가운데 채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할 만큼 자금난 걱정이 없는 곳이지만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자금난을 대비해 4~5곳을 '관리채무계열'로 지정키로 했다.
관리채무계열로 지정되면 주채권은행과 경영정보 제공 약정을 체결하고 은행이 요구하는 경영정보를 수시로 제공해야 한다. 또한 신사업 진출, 인수·합병(M&A), 해외진출 등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투자사업을 주채권은행에 보고해야 한다.
금융 당국은 전년 말 금융기관 신용공여 잔액이 전전년말 금융권 전체 신용공여의 0.1% 이상을 차지하는 대기업 계열군을 주채무계열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올해 '은행업감독규정' 제 79조에 따라 금융권 신용공여액이 큰 30개 계열을 주채무계열로 선정했다.
올해 선정된 30곳의 신용공여액은 260조원으로 지난해 말 금융기관 총 신용공여액 1633조4000억원의 15.9% 규모를 차지했다.
상위 5대 계열(현대차, 삼성, SK, LG, 현대중공업)의 신용공여액은 111조8000억원으로 금융기관 총 신용공여액의 6.8%, 전체 주채무계열 신용공여액의 43%를 차지했다.
주채권은행은 주채무계열로 선정된 곳에 대해 재무구조평가를 실시한 후 재무구조 취약계열을 대상으로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다.
올해 금감원이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한 곳은 STX, 성동조선, 대한전선, 금호아시아나, 한진, 동부 등 6곳이다.
금융당국의 이번 추진은 지난해 웅진의 경우 주채무계열로 선정됐지만 자금난이 가파르게 위축되면서 주채권은행이 손 쓸틈도 없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자 이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경고' 조치다.
하지만 '관리채무계열' 추진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동양사태를 정점으로 직접금융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유인책도 없는데 이같은 조치마저 추진한다면 기업들의 자금은 더 메마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앞선다.
대기업그룹계열 한 관계자는 "공부 못하는 놈을 찍으면 더 몰리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잘 나가는 그룹들은 현금보유량이 사상 최대인 반면 그렇지 못한 곳은 자금 공급 유인책이 없어 부인부 빈익빈 현상이 더 뚜렷해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껏 신용도로만 직접 자금을 끌어왔던 우량 기업들의 자금 공급 방식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그간 우량기업들은 직접 시장에서 주식을 발행하거나 해외에서 회사채를 발행하면 더 저렴하게 자금조달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STX나 동양사태 등을 통해 회사채 시장의 어려움을 지켜본 결과 태도가 바뀌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우량기업일수록 금융권에 손을 빌리지 않았지만 회사채 시장이 한 순간에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크레딧 라인을 둬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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