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 '검사들의 동족상잔' 꼴 좋습니다
<칼럼>전 국민이 시청한 검찰의 라이브 치부쇼
상사와 공감대 형성해가는게 검찰 조직의 원리
동족상잔, 같은 동족끼리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말이다. 귀에 익은 말이다.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낯설은 말일 수도 있다. 6.25라는 역사가 새겨놓은 문신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에게 말이다.
동물들은 동족상잔을 하지 않는다. 소위 ‘이족상잔’을 한다. 같은 동족끼리는 잡아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외는 있다. 자료에 의하면 몇몇 동물이 동족상잔을 한다고 나타나 있다.
대표적인 동물이 돼지다. 돼지는 새끼를 낳을 때 예민하다. 사람이 들여다 보면 낳은 새끼를 잡아먹는다. 또한 자기구역을 침범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학적 반응으로 서로를 해친다.
꿩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피를 보면 흥분하기도 한다고 나와있다. 갓 태어난 새끼를 잡아먹기도 하고 자란 후에도 죽이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때로는 집단적으로 동족을 쪼아서 잡아 먹기도 한다. 이 때문에 꿩을 사육할 때는 부리를 자른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동족상잔은 동물세계에서도 아주 드문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속을 끓이는 일이 비일비재다. 속을 비워야 먹고 산다는 의미다. 속을 비우면 끓일 것도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공적인 생활도 마찬가지다. 신념과 소신은 매우 중요하다. 공직을 수행하는 자가 그것마저 없다면 국민들이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늘 저항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소신이 맞는지, 그렇치 않은지부터 판단해야 한다. 냉정한 성찰을 전제로 소신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소신에 대한 기개가 남달랐다. 저항방법에 대한 얘기다. 홀로 삭히고 참아내고 인내했다.
생육신 가운데 한사람인 이맹전은 눈뜬 장님 행세로 저항했다. 무려 30년을 그렇게 살았다. 수양대군의 반란모임을 알았던 권절은 이후부터 벙어리행세를 했다. 죽을 때까지 평생동안이었다. 가족들과도 수화로 말할 정도였다.
기묘사화에 항의하기 위한 정구의 저항도 유명하다. 그는 18년간 앉은뱅이로 살면서 기묘사화에 항의했다. 세조때 유자광의 전횡에 저항했던 조광보는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며 저항했다. 이루 말할 수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있다. 동족상잔과 선조들의 저항을 말했다.
검찰조직의 하극상을 보며 생각나 적어본 것이다. 하물며 동물들도 같은 동족끼리는 해하지 않는데, 대한민국 검찰이 이렇게 서로를 물고 뜯어서야 되겠나.
굳이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치부를 드러낸 필요가 있겠는가. 명석한 두뇌나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분들이다. 소신이 있다면 관철하는 것이 맞다. 소신을 지키기 위한 저항을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방법이 그것 밖에 없었나 묻고 싶다.
방법이 잘못되면 진실도 없다. 결과적으로 자신만이 살기위한 몸부림으로 보여진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읽혀진다는 의미다.
윤석열 전 수사팀장사에게 묻고 싶다. 진정으로 순수했는지 말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서 행동한 것인지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고민했어야 했다. 검찰조직의 신뢰와 윗선에 대한 저항 말이다. 서로가 물고 뜯는 추한 꼴을 만들었다. 동족상잔(?)처럼 비춰지는 씁쓸한 모습들에서 윤 전 팀장의 소신이 빛날 수 있겠는가 싶다.
선조들의 저항정신 곰곰 새겨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희생시키며 진실을 알리려 했다. 오랜 세월을 감내하고 인내했다. 과연 윤 전 팀장은 그러한가. 진실하게 당신을 불살랐다고 보는가. 동물들도 꺼리는 동족상잔(?)으로 검찰을 몰고간 것은 아닌가.
어느 전직 검찰총장의 말이 떠오른다.
“수사는 혁명하는 게 아니다. 검사장을 설득해야 한다. 상사와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게 조직의 원리다. 검사 개개인이 진실을 판단해 수사한다면 검찰은 통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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