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취급’ 박주영·가가와, 영국서 물 먹었다고 끝?
소속팀에서 전력 외 ‘유령 취급’
타 리그에서 맹활약..시선 돌려야
영국에서 물 먹었다고 축구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전·현직’ 국가대표 박주영(28·아스날)과 가가와 신지(24·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동병상련 처지에 놓였다. 최근 박주영과 가가와를 바라보는 한일 축구팬들의 시선은 차갑다. 특히, 맨유 모예스 감독 눈 밖에 난 가가와를 보는 일본인들은 냉소 그 자체다.
일본 야후, 2ch 축구게시판 네티즌들은 연일 가가와를 향해 독설을 쏟아내기 바쁘다. “리그 선발은 꿈도 못 꾸고 FA컵에서 18세 유망주와 주전을 다투는 선수가 일본 국가대표”라는 자괴감 섞인 글이 높은 추천수를 기록했다. 한 축구팬은 “(가가와를 홀대한) 모예스 감독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며 “맨유에 엉뚱한 아이가 섞였을 뿐이다. 외질과 파브레가스마저 맨유 이적설에 휩싸였을 때 ‘자신은 맨유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적제안을 거절했지만 가가와는 달랐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축구팬은 “모예스 감독은 전천후 멀티 스타일을 좋아한다”며 “가가와는 수비가담에 소홀한 편이다. 반쪽 재능은 맨유에서 버티기 어렵다. 또한,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경기 중 맨유 동료와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며 아쉬워했다. 손흥민이 1도움을 기록한 레버쿠젠과의 챔피언스리그 1차전을 통해 시즌 첫 출격했지만 가가와의 설 자리가 너무 좁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물론 순간의 선택이 박주영과 가가와를 침체기로 몰아넣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축구선수라면 누구라도 명문클럽의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더구나 박주영은 벵거의 ‘직통전화’에 넘어갔다. 가가와 또한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이 관전한 자리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1골-1도움 빼어난 기량을 펼쳐 맨유행 고속도로를 닦았다.
박주영과 가가와가 몸담은 아스날·맨유 선수들은 기가 세고 열정적이다. 또 ‘호전적’ 공격수가 많고 그런 공격수를 선호하는 곳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다. EPL 스타일은 진격 또 진격 ‘일방통행’을 요구한다. 슈팅 기회서 동료에게 패스하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실수를 두려워한다”는 혹평이 쏟아진다.
세브첸코, 후안 베론 등 차분하고 정교한 타입이 EPL에서 대접받지 못한 이유다. 팀 플레이어 정점 박지성마저 “공격력이 떨어진다”는 영국 평론가의 ‘섣부른 편견’에 갇히기도 했다.
이타적인 박주영과 가가와 또한 EPL 스타일 적응에 실패했다. 박주영은 스트라이커지만 ‘골 확률’을 중시해 오밀조밀 섬세하게 만들어가는 타입이다. 가가와도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전진패스나 돌파보다 원터치 리턴패스로 동료를 최대한 활용해 지능적으로 공간을 선점한다.
영국 EPL에서 좌절했다고 박주영과 가가와 가치가 하락한 것은 아니다. 둘은 유럽에서 분명히 성공했고 인정받았다.
박주영은 프랑스에서 자타공인 최고의 헤더로 인정받았다. 프랑스 1부리그 ‘리그앙’은 유럽의 다크호스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흑인용병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그곳에서 박주영은 제공권을 장악했다. ‘원샷원킬’이라는 별명에서도 묻어나듯, 골 결정력도 탁월했다. 게다가 세계적 명문 올림피크 리옹을 상대로 골을 터뜨리는 등 강팀 킬러 극찬과 함께 프랑스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가가와 또한 독일 도르트문트 시절 일명 ‘꼬마 초밥 폭격기’로 불리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도르트문트 위르겐 클롭 감독은 지금도 맨유의 가가와 푸대접을 못마땅해 한다. 클롭 감독은 최근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맨유는 가가와를 활용할 줄 모른다. 가가와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어야 최적의 성능을 발휘한다”면서 “그런데 맨유는 가가와를 측면으로 내몰고 있다. 또 지난 시즌 한 경기당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0분에 불과했다. 90분을 소화하는 선수에게 20분은 너무도 짧고 가혹하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처럼 박주영과 가가와는 가치 있는 선수고 프랑스와 독일 축구 전문가도 인정한 리그 스타였다. 둘은 지금 몹시 외롭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투명인간 취급당하며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소속된 사회에서 자신이 필요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감지하면 우울함이 엄습한다.
더구나 박주영과 가가와는 지원군도 부족하다. SNS에선 냉소적 시선이 쏟아진다. 다부져야 한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우루과이를 4강으로 이끈 ‘월드스타’ 디에고 포를란도 맨유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박주영과 가가와 또한 비록 빅 클럽에 녹아들지 못했지만 국가대표팀에만 오면 펄펄 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자신감 재충전이다. 자신감 회복 지름길은 자국 국민의 변함없는 격려와 성원이다. 박주영과 가가와를 향한 한일 축구팬들의 너그럽고 관대한 시선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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