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20주년을 맞은 '스윙걸즈'와 2017년 국내에서 46만 명을 동원했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두 편의 일본 영화가 재개봉됐다. 잔잔한 설렘과 감정의 여운, 아날로그 감성 등 최근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정서를 지닌 이들 작품은, 신작이 부족한 극장가에서 조용히 관객의 정서적 공백을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CGV 단독으로 개봉한 '스윙걸즈'는 2004년 일본에서 처음 공개된 코미디 영화로,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받던 여고생들이 식중독에 걸린 밴드부를 대신해 빅밴드 재즈를 연주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경쾌하게 그려냈다. ‘워터보이즈’, ‘해피 플라이트’ 등을 연출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대표작이며,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배우 우에노 주리가 주연을 맡았다.
롯데시네마 단독 개봉작인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자신을 외톨이로 고립시킨 소년과 밝고 인기 많은 소녀가 하나의 노트를 통해 비밀을 공유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청춘 로맨스다. 영화는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며, 일본 내 누적 발행 250만 부, 국내 30만 부 판매를 기록한 작품이다. 2017년 국내 개봉 당시 4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일본 청춘물에 대한 정서적 수요를 입증한 바 있다
두 작품 모두 신작 대작처럼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진 않았지만,꾸준히 관객의 선택을 받고 있다.
그 배경에는 한국 청춘영화의 장기적인 부진이 있다. 최근 개봉된 '청설',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모두 대만 원작의 리메이크작이었고, 그 중 '말할 수 없는 비밀'만이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더 큰 문제는 오리지널 청춘 영화가 거의 기획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 이후 산업 전반이 리스크 최소화 전략으로 회귀하면서,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청춘물은 투자 우선순위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OTT 플랫폼에서는 자극적 전개와 장르성이 강한 틴누아르 중심의 콘텐츠가 강세를 보이는 반면, 극장가에서는 고정 팬층과 인지도가 없는 청춘영화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인식도 한 몫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 청춘영화는 오히려 리스크 대비 효율성이 높은 수입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도를 확보한 작품이 많고, 일정한 팬층의 구매력까지 갖추고 있어 극장가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선택지'로 여겨진다.
동시에 이는 극장가의 운영 전략 변화와도 연결된다. 과거처럼 신작 중심으로 스크린을 운영하기보다, 최근 극장가는 일정 수요가 확보된 재개봉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 중이다.
신작 공급이 지연되고 흥행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정서적 신뢰도와 관객 충성도가 입증된 일본 청춘영화는 비교적 낮은 마케팅 비용으로 꾸준한 회전율을 보장하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이들 작품은 콘텐츠의 정서적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극장 운영의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전략적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스윙걸즈'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등 일본 영화의 재개봉은 단지 과거 인기작의 부활이 아닌, 한국영화가 청춘의 서사를 스스로 내려놓은 결과를 보여주는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